김앤장의 주먹구구식 재량근로제 도입
회사가 근로자대표 지명…시니어 변호사 앞 '기명 투표'로 선출
근로자대표, 유연근로제 합의 등 권한 막강…선출 절차는 '부재'
전문가들 "민주성·공정성 담보 방안 담아 법제적 공백 개선해야"
2025-02-21 17:19:44 2025-02-21 17:19:44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재량근로제 도입을 위해 근로자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근로자대표를 사실상 지명하고 구성원들에게 기명 투표를 하도록 해 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선거권 행사를 위한 기본 원칙인 '무기명 비밀투표'도 지켜지지 않은 배경에는 '근로자대표' 제도의 법 공백이 있습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1일 <뉴스토마토> 취재에 따르면, 김앤장은 지난 1월 재량근로제 도입을 위한 근로자대표 선출에 나섰습니다. 당시는 김앤장이 변호사들을 위한 취업규칙을 만들지 않았다가 고용노동부 적발, 근로감독을 받은 뒤였습니다. 고용부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약 6개월간 진행된 근로감독에서 변호사의 근로시간 관리 체계·운영에 문제가 있다며 개선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2016년 5월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본사. (사진=뉴시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변호사는 재량근로제 적용이 가능한 대상입니다.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재량근로제 도입이 가능합니다. 재량근로제는 노사가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는 제도로,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선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겨 일하도록 하는 게 가능한 겁니다. 따라서 재량근로제는 장시간·불규칙한 노동이 가능해지는 만큼 노동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김앤장은 재량근로제 도입을 위해 근로자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빚었습니다. 저연차 변호사들에게 근로자대표 명단을 주고, 시니어 변호사가 보는 앞에서 서명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저연차 변호사들은 연락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회의실로 모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 측은 어떤 과정에 의해 선출됐는지도 모를 근로자대표 명단을 제시했고 기명으로 투표하도록 한 겁니다. 사내에서 여론이 들끓자 김앤장은 뒤늦게 재량근로제 합의안에 대해 구성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국내 1위 대형로펌에서 '주먹구구식' 근로대표자 선출, 재량근로제 도입이 가능했던 이유는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대표 제도'에 대한 명문 규정을 충분히 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로자대표의 정의는 근로기준법 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에 담겨 있습니다. 이 조항은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때 '그 사업 또는 그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는 경우 그 노조'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 기준에 관해 협의하도록 합니다. 단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근로자대표'라고 한다고 정의합니다. 근로자 과반을 대표하는 노조가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게 없다면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 것인지, 임기가 언제인지 등은 공백으로 남아있는 겁니다. 사측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개입할 여지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반해 근로자대표가 가진 권한은 막강합니다. 근로기준법 24조에 따라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경우 '해고일 50일 전'까지 근로자대표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하고, 성실히 협의하도록 한 조항이 대표적입니다. 재량근로제만 아니라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화된 근로시간 제도를 도입할 때도 회사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만 하면 됩니다. 사측이 회사에 유리한 근로자대표를 세우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근로자대표 선출 방식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고용의 행정해석과 판례 정도입니다. 고용부가 작성한 '근로기준법 질의회시집'을 보면 "근로자대표가 행사하는 대표권의 범위를 근로자들이 주지한 상황에서 해당 직종이나 직군의 근로자 과반수가 참여한 투표·거수 등의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 선출 또는 결정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범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재량근로시간제 서면 합의 및 선택적-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서면합의를 한 사업장에서 그 근로자대표가 이러한 합의를 목적으로 선출된 것임을 근로자들이 몰랐을 때 이는 적법한 서면합의가 아니라고 판단한 노동청 질의회시도 있다"며 "김앤장에서의 저연차 변호사·근로자대표 선출이 이런 목적에 대한 설명없이 이뤄졌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습니다. 이어 "사후적으로 재량근로제 합의를 위해 이렇게 했다고 설명하였다면,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모든 투표 종료 후 설명인지, 투표 도중 설명인지, 설명 후 다시 투표를 하였는지 등) 적법성 논란의 여지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근로자대표 제도에 대한 명문 규정이 미비하다 보니 대표가 적법하게 선출됐는지 법적 해석도 분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로자대표 선출과정에서 적법성을 문제로 삼으려면 회사 구성원이 법적 다툼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근로자대표 제도를 악용해도 불만만 토로한 채 넘기는 이유입니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학원 교수(법학)는 "근로자대표는 근로기준법상의 최저 근로조건을 완화하는 주체로 설정돼 있지만 그 대표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민주성이나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현재로선 없다"며 "근로자대표 제도의 법제적 공백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기된 논란에 대해 김앤장 관계자는 "저연차 변호사들의 자발적 의사가 취합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절차가 진행됐다"며 "스스로 선택과 판단에 따라 동의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서면 합의 내용에 대해서도 변호사들에게 그대로 공유하고 설명이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이어 "(근로자대표는) 법상 대표 선출 방식에 따로 정함이 없어서, 합리적으로 대표를 선정해 동의 절차를 진행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