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서울시 ‘법인택시 노사합의 임금모델’ 실증사업은 택시발전법을 무력화하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택시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주 40시간 근무제를 우회하려는 시도라는 겁니다. 서울시는 이번 실증사업을 국토교통부의 모빌리티 실증특례(규제 샌드박스)로 신청한 상황입니다. 서울시가 무리하게 실증사업을 추진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국토부 심의를 앞두고 관계기관인 고용노동부는 법률 검토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7일 <뉴스토마토>에 “서울시 실증사업은 개별 사업별로 기존 규제내용들을 검토하는 과정으로, 아직 규제 샌드박스 혁신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다”며 “고용부 규제부서에서도 추가 법률 검토를 한다는 입장인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규제 샌드박스가 혁신 사업과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제도지만, 이번 실증사업은 노사 간 임금계약 문제가 걸려 있다”며 “택시발전법 외에도 근로기준법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등 계약 관계에 걸친 민감한 문제들이 있어서 관련법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애초 서울시는 올해 초부터 이번 실증사업을 현장에 도입해 시행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지난해 11월 국토부에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 사업으로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국토부 심의 기간이 늦어지면서 사업 도입이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서울 중구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시의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 법인택시 TF 회의자료'를 보면, 올해 1월까지 전체 법인택시 종사자 2만여명의 5%인 1000여명을 모집해 주 40시간의 택시월급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임금모델을 적용하려 했습니다. 서울시가 제시한 임금모델 유형은 △실차시간 기반 성과급제 △보합제 △자율운행 택시제(리스제) △파트타임 근무제 등 4가지입니다.
실차시간 성과급제는 실차시간으로 소정근로시간을 정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기준급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시간에 따른 고정급을 지급하고, 성과급은 기준금 이상 납입할 경우 노사가 정한 배분률에 따라 지급합니다. 보합제는 총 운송수입금을 노사가 합의한 비율(보합률)로 나누어 가지며, 근로시간에 비례한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합니다.
리스제의 경우, 택시 임대료와 유류비, 차량보험료 등을 운수종사자가 부담하고 운송수입금 전체를 운수종사자가 가져갑니다. 파트타임 근무제는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미만으로 하고 정해진 시급을 받는 형태입니다. 4가지 유형 모두 택시발전법에서 규정한 주 40시간 근무제를 토대로 임금을 산정하지 않습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2022년에도 리스제 도입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지만 도입되지 않은 바 있습니다. 당시 국토부는 택시 리스제가 현재 운영되는 택시제도와 맞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특히 전액관리제와 택시월급제를 시행 중인 상황에서 택시업의 기본 방침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택시월급제 무력화 개정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서울시는 법인택시 경영난이 심화하면서 새로운 임금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가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전액관리제 이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택시업체 55곳 중 51곳(92.7%)이 전액관리제 위반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실적으로 변형 사납금제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서울시가 어렵게 도입한 택시월급제를 안착시키려는 노력 없이 택시월급제와 주 40시간 근무제를 우회하려는 편법을 유도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삼형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정책위원장은 “서울시가 현장조사에서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났으면 강력한 처벌에 나설 일이지 택시발전법을 무력화하는 임금모델들을 추진하려 한다”며 “서울시 실증사업 자체가 혁신사업이 아닌 임금계약과 관련된 내용으로 규제 샌드박스 대상이 아니다”라고 규탄했습니다.
황규수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실차시간 성과급제와 파트타임 근무제는 소정근로시간이 아닌 실제 차량운행시간을 기초로 하는 임금모델이고, 보합제와 리스제는 도납제나 사납금제와 유사한 임금모델”이라며 “택시발전법 노동관계에서 적용하는 주요 기준을 폐기한다면, 노사 간 갈등이 더 커지고 노동환경이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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