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시즌 쏟아지는 주주제안…‘밸류업’ 현장
배당 증액부터 이사 선임까지…바위에 계란 흔적 남기기
2024-03-12 02:00:00 2024-03-12 09:27:08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주주제안이 봇물 터져 나오듯 늘고 있습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 시행으로 주주환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라 올해 주총에선 소액주주들의 요구가 얼마나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연초 이후 지난 8일까지 전자공시(Dart)에 올라온 ‘주주제안’ 관련 공시는 432건에 달합니다. 여기엔 실제 주주들이 회사 측에 요구하는 제안 이외에도 주주제안과 관련된 설명이나 규정 내용 등을 알리는 공시가 섞여 있어 실제 주주제안은 이보다 훨씬 적지만 예년보다 크게 증가한 것은 분명합니다. 
 
주주제안은 주로 정기주총 개최 일정에 맞춰 주총 안건(의안)에 포함되며 주총에서 표결에 부치는 방식으로 가부가 결정됩니다. 과거에는 소액주주들이 낸 주주제안을 이사회에서 무시하고 넘겨 주총 의안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고 주주환원에 대한 관심도 강화되는 흐름이어서 요즘엔 일단 주총 의안에는 포함시켜 논의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주주환원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3월에 열린 삼성전자 주총 당시의 모습. (사진=뉴시스)
 
상당수 주주제안 ‘배당’
 
소액주주들이 내는 주주제안 안건의 상당수는 현금배당과 관련이 있습니다. 배당금을 증액해 달라거나 배당을 하지 않던 기업에 배당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8일에 올라온 DMS의 의결권대리행사 권유 공시엔 이익잉여금 처리에 관한 주주제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해 회사가 올린 11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포함해 회사에 쌓인 미처분 이익잉여금이 2001억원, 그중 약 3억원을 뺀 1997억원이 현금배당가능 금액이므로 순이익의 30%(1주당 136원)를 배당해 달라는 제안입니다. 이사회에서 정한 배당금은 주당 90원, 총액 약 22억원입니다.
 
DMS의 주주제안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주주들의 요구가 기업이 가진 여력에 비해 과도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2000억원에 육박하는 잉여금 중 1.6% 수준인데다, 1년 전에도 총 30억원을 배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 약소한 요구도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최대주주 측 지분율이 29%로 압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없는 상황에서 나머지 개인 주주들이 얼마나 뭉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6일 삼성물산에서 올라온 배당 관련 주주제안의 경우엔 요구 금액이 조금 큰 편입니다. 시티오브런던 외 4인의 주주들이 이사회에서 정한 주당 2550원 현금배당보다 많은 4500원 배당을 요구한 것입니다. 7.64%의 지분을 보유 중인 3대 주주 국민연금이 어느 편에 설지 주목됩니다.
 
금호석유화학의 주주제안에는 자기주식 소각의 건이 포함됐습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회사의 자사주 절반을 올해 말까지 소각하고 나머지 절반은 내년에 소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감사위원회 위원(사외이사) 선임 안건도 있습니다. 김경호 현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사외이사)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측은 이같은 제안이 박철완 전 상무의 지분 의결권을 넘겨받은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대리하는 것이라며 반발했으나 차파트너스 측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주주환원이 경영권 분쟁과 맞물려 있어 이슈가 된 경우입니다. 
 
POSCO홀딩스 공시에 올라온 주주제안은 회장으로 내정된 장인화 후보를 포함한 이사들의 선임을 반대하고 권영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소액주주들이 물의를 빚은 후보를 거부한다는 의사표시이자, 철강기업 포스코에 2차전지 날개를 달아준 권 후보에게 힘을 싣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장 후보 선임을 반대하거나 기권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물론 포항 현지에서도 장 후보 반대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나 현실성은 높지 않습니다. 소액주주들이 세를 더 키운다고 해도 POSCO홀딩스의 대표 자리를 바꾸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선임 안되면 감사라도
 
지난 몇 년 동안엔 회사 경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주주제안이 부쩍 늘었습니다.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이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의도가 있지만, 이사 선임을 쥐락펴락 할 수 있을 만한 지분엔 미치지 못해 주로 감사 선임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하는 안건의 경우 최대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이 3%로 제한되는 것을 노린 겁니다. 
 
일반 주주를 대변할 인물을 감사로 선임하는 데 성공할 경우 회사 측의 불합리한 결정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감사가 버티고 있어도 일방 독주를 벌이는 경영자가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 7일에 공시된 DB하이텍 주주총회 소집공고에는 감사위원회 위원(사외이사) 선임의 건이 6호 의안에 포함돼 있습니다. 후보는 캐로피홀딩스가 추천한 윤영목, 소액주주연대가 추천한 한승엽 등 2명입니다. 모두 주주제안에 포함됐으나 사측은 더 많은 찬성표를 얻은 후보만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개인 주주들이 배당과 경영진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 행동주의펀드들은 거버넌스 문제로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JB금융지주에 이사회 구성 전반에 관한 주주제안을 제출했습니다. 이들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율 50%를 원칙으로 하는 정책 도입을 이사회에 요구했으나 사측이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 이유가 장기 재임 중인 이사들에게 있다고 보고 물갈이를 주장했습니다. 사외이사 후보 3인과, 비상임이사 후보 1인을 후보에 올리고 의결권을 모으기 위해 비사이드코리아를 통해 전자위임장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총 시즌에 나오는 주주제안은 계속 늘고 있으나 지분 대결의 한계에 부딪혀 부결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이 주주 권리 행사와 사측의 정책 변화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주주제안은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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