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어느날 갑자기 ‘대출 일시상환하세요’
대출받고 집사면 약정 위반…“그냥 주담대 아니었나요?”
갚아도 3년간 주택대출 불가…대환 어려워 사업자대출 편법 기승
2023-09-14 06:00:00 2023-09-14 06:00:00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A씨는 지난주 갑자기 은행에서 대출을 일시상환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생활안정자금 대출의 부가 조건을 어겼다는 이유에서입니다. A씨가 새집으로 이사한다는 생각에 올해 초 인근에서 분양한 아파트에 청약, 당첨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은행은 다음달 말까지 대출잔액을 일시상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A씨는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라며 당장 큰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합니다. 
 
약정위반 인지 못했다가 날벼락
 
지난주부터 많은 대출자들이 A씨와 비슷한 전화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모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올 상반기에 추가로 주택을 매입했거나 아파트 분양에 당첨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은행이 대출금 일시상환을 통보한 것은 국토교통부의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은행에서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 주택 구입 3개월 내 실행된 대출은 주택구입자금대출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하는 경우엔 모두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대출이 실행됩니다. 2018년 9월14일에 시행된 주택시장 안정대책에 따른 것입니다.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기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는 것을 차단하는 조치였습니다. 
 
생활안정자금 대출 신청서류에는 대출기간 중 추가로 주택을 매입하지 않는다는 약정서가 첨부돼 있습니다. 여기엔 주택 취득 외에도 분양권, 입주권도 금지되어 있으며 증여를 받아도 안 됩니다. 오직 상속만 예외입니다. 또한 세대주 명의로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세대원이 분양을 받아도 똑같이 대출 약정위반으로 처리됩니다. 
 
이 경우 국토부는 1년에 두 번, 상반기와 하반기에 약정위반 대출자들의 명단을 각 은행에 일괄통보해 약정위반에 따른 대출잔액 일시상환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난주부터 은행의 전화를 받은 대출자들은 올해 상반기에 추가로 주택을 매입한 경우입니다.  
 
특히 2020년 8월부터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주인이 실거주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전세퇴거자금 수요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대부분 생활안정자금 대출입니다. 이들 중에서 투자용이든 이사할 집을 먼저 계약할 목적이었든,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경우는 모두 약정위반에 해당합니다. 올해 상반기 서울과 수도권 분양시장이 활기를 되찾은 덕분에 이른바 ‘줍줍’에 나섰던 유주택 대출자들도 대거 포함됐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받았다가 올 상반기 주택을 추가 매입한 대출자들이 은행으로부터 대출금 일시상환 통보롤 받고 있다. 사진은 주택담보대출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는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모습.(사진=연합뉴스)
 
대출 갈아타기 ‘난감하네’ 
 
A씨는 “대출 담당직원이 내미는 깨알 같은 글씨로 꽉 찬 수십 종의 서류에 사인하고 기다리는 데에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그 서류 중에 그런 약정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억울함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은행 직원들은 해당 내용이 중요한 조항이라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고 답변합니다. 실제로 설명을 들었든 그러지 못했든 해당 서류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대출상환 책임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일단 은행의 통보를 받은 이상 유예기간 안에는 대출 잔금을 전액 상환해야 합니다. 은행별로 통보일부터 1~2개월 유예기간을 줍니다. 이 기간 안에 상환하지 못하면 연체이율이 부과되고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며 내용증명 등 여러 법적 절차를 거쳐 최악의 경우 담보물건인 집이 경매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출을 갚아야 합니다. 
 
대출을 상환한다고 해도 패널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출금 일시상환 여부와 관계없이 은행이 약정위반으로 등록한 날로부터 3년간 은행은 물론 모든 1금융, 2금융권에서 주택 관련 대출이 금지됩니다. 
 
대출 없이 집을 사는 것은 ‘찐부자’나 가능한 일이어서 일반인들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집을 팔지 않는 이상 3년 동안 집을 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것도 안 되겠죠. 
 
3년 동안이라는 미래에 할 수 없는 것들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대출을 상환해야 합니다. 주택담보대출이라면 금액이 적지는 않겠죠. 
 
일단 정상적인 주택 관련 대출은 통로가 모두 막힌 상태입니다. 약정위반으로 찍힌 마당이라 다른 은행은 물론 2금융권 대출로도 갈아탈 수가 없습니다. 
 
은행에서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는 것은 가능합니다. 아무래도 신용대출금리를 주택담보대출 수준에 견줄 수는 없으니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각오해야 합니다. 
 
금리보다는 대출한도가 더 큰 문제겠죠. 신용대출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합산됩니다. DSR 40%가 적용될 경우 대출이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유예기간을 활용해 일시상환을 요청받은 생활안정자금을 전액 상환 전에 일부라도 갚으면 그만큼 DSR 여력이 늘어 신용대출 한도액을 조금 더 키울 수는 있습니다. 
 
제3금융 이른바 대부업권으로 넘어가면 해결은 가능합니다. 대신 대출금리가 10%대로 껑충 뛰어오릅니다. 온라인투자금융인 P2P대출도 활용됩니다. 담보가 있는데도 연 15% 수준의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이 억울할 뿐입니다.
 
직장인에게 사업자대출 편법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편법이 활개를 칩니다. 약정위반 대출자들에게 사업자대출을 알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자대출은 자영업자 등을 위한 대출상품이라서 직장인은 받을 수 없습니다. 특히 대출 신청 과정에서 기존 사업장에서 발생한 일정기간의 매출내역 등이 첨부돼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대출상담사들은, 브로커를 통해 3개월 전에 개설한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 심사 문턱이 낮은 지역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대행하고 있습니다. 대출자금이 사업의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도 사후점검을 하는데 이것까지도 증빙서류를 만들어 제공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 별도의 비용도 청구됩니다. 
 
편법과 불법이 분명한데도 특판대출금리가 5% 안팎으로 낮다 보니 이런 창구를 통해 사업자대출을 이용하는 약정위반자들이 상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위기에 빠진 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달 말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공급 활성화 대책에는 취득세, 양도세 등 세율과 다주택자 기준을 완화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지만, 생활안정자금 규제를 푼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어느날 갑자기 대출금 일시상환을 통보받는 대출자들과, 필요악으로 생겨난 편법 대출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편, A씨는 3년간 주택 관련 대출이 금지돼 2년 후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할 때에도 잔금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 경우엔 대출명의자를 배우자로 변경하면 대출이 가능합니다. 단, 은행권에서는 아직 어렵고 2금융권 중에서 취급하는 곳이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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