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남북한 두 국가론'을 놓고 엇갈린 입장을 내면서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정 장관은 지난 18일 현재의 남북 관계와 관련 "초점은 적대성을 해소하는 데 맞춰야 한다"며 "'사실상의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우리 대북 정책의 핵심"이라고 했다. 25일에도 남북이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으로 두 국가"라며 "적게는 50∼60% 국민이 북한을 국가라고 답한다. 국민 다수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어갔다. 그는 장관 취임 전부터 이 같은 인식 아래 통일부 명칭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남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김정은, '2민족-2국가' 주장
'두 국가' 논란은 분단 80년 동안 계속돼왔다. 그동안은 대체적으로 북이 남의 정권을 향해 영구 분단을 획책한다며 비판해왔으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2023년 12월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대남 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천명했다. 남북한이 '동족'도 아니라고까지 한 것이다. 그는 이듬해 1월에도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면서 이상의 '대남 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헌법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의힘과 상당수 언론은 정 장관이 김정은의 이 같은 '두 국가론'을 수용 또는 동조하는 게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정은이 주장해온 적대적 두 국가론을 직접 옹호·대변하는 반헌법, 반통일적 발상"이라며 정 장관을 즉각 해임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위성락 실장은 24일(현지시간)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END 이니셔티브'가 '두 국가론'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취지의 언론 질문에 "저희가 (북한의) 두 국가(론)를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정부는 '남북 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입장"이라며 "물론 국제적으로는 유엔에 동시에 가입해 있는 두 국가의 모습이 나와 있지만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는 우리는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우리 헌법에도 맞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언론이 '자주파 대 동맹파' 프레임을 여기에 버무려서 갈등론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위성락 실장이 '두 국가론'을 부인했다는 답변을 끌어낸 질문도 정 장관을 직접 거론한 것이 아니었다.
위 실장은 '두 국가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남북기본합의서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정 장관도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해 설명하면서 "영구 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잠정적으로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생긴 특수관계 속에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오는 30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대통령 운신 폭 확대 효과도 커
정 장관과 위 실장 모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전문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를 기준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관계는 유엔에 각기 가입했다는 국가성과 분단 상태의 동족이라는 특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결국 남북 대화를 직접 담당해야 하는 정 장관과 전반적인 한반도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위 실장이 남북기본합의서 범주 내에서 남북 관계의 양 측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운용하기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이 움직이는 운신 폭을 확대하는 효과도 크다.
정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과 같은 맥락에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의 주역 중 한 명인 임 전 장관은 (민족공동체통일 방안 2단계인) '남북연합'이라는 협력기구를 제도화하여 분단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교류 협력을 통해 '법적 통일'에 앞서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실현해야 한다며 '사실상의 통일'을 목표로 제시해왔다. 우선 남북이 평화 공존하며 서로 오가고 돕고 나누는 상황부터 만들자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사실상의 통일론'과 '특수관계론'을 일찍부터 수용했다. 지난 20대 대선 과정인 2021년 11월에 "통일 지향은 이미 늦었다. 사실상의 통일 상태, 통일된 것과 마찬가지면 됐다"며 "굳이 통일을 강조하며 누가 누구에게 흡수당했냐며 적대성을 강화할 필요는 없다"고 한 것이다. 유럽연합 같은 국가연합(confederation) 정도를 당면 목표로 설정하자는 것이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 처음 발표한 올해 8·15 경축사에서도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다.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라며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이 정신은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판문점 선언, 9·19 공동선언까지 남북 간 합의를 관통한다“고 밝혔다. 김 총비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남북한은 특수관계라고 확인한 것이다.
정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은 김정은 총비서의 '두 국가론'을 전면 외면하고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은 남북한이 다른 민족이라며 '2민족-2국가'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마치 1970년대 동독이 "서독과 달리 동독에서는 사회주의 독일 국가, 사회주의 민족이 발전됐다”며 '2민족'론을 들고 나온 것과 유사하다. 정 장관은 이와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정 장관이 북한 주장을 대변한다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얘기다.
김 총비서의 '2민족-2국가'론은 북한에서도 곧바로 사회 전체에 관철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최고 존엄인 절대 수령이 헌법에 반영하라고 지시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헌법은 바뀌지 않았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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