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계부채 문제 대응 정책: 차입자 규제 vs 은행 규제
2025-09-30 06:00:00 2025-09-30 06:00:00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단순한 채무 관리의 범위를 넘어 경제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이유는 가계부채가 부동산 시장과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전체 가계부채의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처럼 주택과 직접 연결된 형태다. 한국 가계의 자산 구조 역시 부동산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아 주택가격의 등락은 곧바로 가계의 부채 부담과 자산 건전성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경제에서 가계부채 문제가 부동산 시장과 함께 거시경제적 과제로 다뤄지는 이유다. 
 
정부는 가계부채 억제와 집값 안정을 위해 꾸준히 정책을 내놓아왔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6.27 대책이나 9.7 대책에서 보듯이 대부분은 차입자 규제에 집중되어 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LTV(주택담보인정비율), 대출한도 제한 등은 차입자의 대출 수요를 직접 줄이는 정책이다. 
 
차입자 규제는 단기간에 대출 수요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규제는 행정지침 형태로 신속히 시행할 수 있어 정책 집행이 간편하다. 무엇보다 효과가 단기간에 통계로 나타나므로 정책 성과를 보여주기에도 용이하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실수요자까지 대출이 막혀 청년·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고, 경기 침체 국면에서 가계의 소비 여력까지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규제를 회피하려는 수요가 제2금융권이나 비제도권 금융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기 십상이다. 
 
이에 비해 은행 규제는 대출을 공급하는 쪽을 겨냥한다. 흔히 사용되는 방식은 자본 규제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할 때 적용되는 위험 가중치를 높이거나, 경기 상황에 따라 추가 자본을 쌓도록 하는 완충자본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은행이 충분한 자본을 확보하면 충격을 흡수할 능력이 커지고, 대출 비용이 올라 과도한 대출 확대를 억제하는 효과도 생긴다. 단기적으로는 대출 억제 효과가 약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금융시스템의 내구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제기구들도 같은 점을 지적한다. IMF와 BIS는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 구조가 단순한 차입 억제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금융기관의 손실 흡수 능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권고해왔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위해 주택담보대출 위험 가중치를 15%에서 20%로 상향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 걸음 나아간 조치지만 여기에 멈출 것이 아니라 완충자본 규제 같은 체계적인 장치가 더해져야 한다. 
 
해외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유럽에서는 이미 부문별 경기 대응 완충자본이나 부문별 시스템 리스크 완충자본을 도입해 특정 부문 과열에 대응하고 있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주택시장 과열기에 은행들로 하여금 해당 부문에 추가 자본을 쌓도록 요구한 바 있다. 이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된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다. 특정 부문의 위험이 전체 금융시스템으로 번지지 않도록 사전에 방어막을 두텁게 하는 것이다. 한국도 2018년 비슷한 제도 도입을 검토했으나 실제 시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한국은 차입자 규제가 이미 강력한 수준에 도달했다. 추가 강화는 실수요자 피해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은행 자본 규제는 아직 정책 여지가 충분하다. 완충자본의 단계적 적용, 대손충당금 확충, 스트레스 테스트 강화 등을 통해 금융권 전체의 내성을 높여야 한다. 나아가 제2금융권에 대한 관리 강화도 필수적이다. 대출 수요가 비은행권으로 몰리는 것을 방치하면, 가계의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지고 금융 취약성은 높아진다. 동시에 청년·저소득층 같은 취약 차주에 대해서는 정책금융과 보증을 통한 선별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속도 조절 이상의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족쇄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은행자본 규제를 통해 가계 대출의 비용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충격이 닥쳐도 금융시스템이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도 긴요하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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