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조건부 전경련 복귀…“정경유착시 탈퇴”
삼성 준감위 권고로 SK·현대차·LG도 복귀 논의 돌입
'정경유착' 단절이 최대 관건…전경련 쇄신 미흡이 문제
준감위 '권고', 향후 정권교체 염두에 둔 전략
경실련 등 "정경유착 이어가겠단 것" 비판
2023-08-21 06:00:00 2023-08-21 06:00:00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SK그룹과 현대차그룹, LG그룹 등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재가입 논의에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전경련 '조건부 복귀 권고'를 결정하면서입니다. 준감위는 전경련 재가입에 대해 경영진 등의 판단으로 남겨놨으나, 재계에선 '권고'를 전제로 한 조건부 승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재계 1위인 삼성이 먼저 재가입 의사를 밝힌 만큼 SK, 현대차, LG 등 다른 그룹들도 복귀 수순을 밟을 것이 유력시 됩니다. 다만 삼성과 마찬가지로 전경련의 '정경유착' 단절과 혁신안 실천, 변화 등을 감안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실질적인 활동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단체 맏형격'이었던 전경련은 박근혜정부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해체 위기에 처했습니다. 삼성을 비롯한 4대 그룹은 2016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자금을 기업들에 요청한 사실 등이 드러나자 전경련에서 잇따라 탈퇴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16년 12월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관건은 '정경유착 단절'…4대그룹 한경협으로 자동승계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이 전경련에 복귀할 경우 2017년 2월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삼성 15개 계열사가 전경련에서 탈퇴한 지 6년 6개월 만에 다시 합류하게 됩니다.
 
관건은 '정경유착' 단절인데, 전경련이 정권과 가까운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을 단기 수장으로 앉히는가 하면 고문으로 남게 하는 등 쇄신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 대행이 내년 총선 공관위원장 후보로 입길에 오르내리는 상황인데, 전경련 고문으로 남으면 전경련 독립성 훼손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정경유착으로 풍비박산 난 조직이 또다시 정권과 연결고리를 통해 정경유착을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22대 총선을 8개월여 앞둔 현재 여권 내부에선 김 대행을 비롯해 안대희 전 대법관과, 김무성 전 대표 등이 공관위원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공관위원장의 경우 총선 공천을 결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데요. 정권의 뜻에 맞춰 밀접하게 코드를 맞춰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또다시 정경유착이 우려된다는 게 비판 요지입니다.
 
전경련은 오는 22일 총회를 열고 한국경제인협회로의 명칭 변경 등을 실시합니다. 이 자리에서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이었던 한국경제연구원의 흡수 통합 안건과 류진 신임 회장 추대, 김 대행의 고문 선임 안건 등이 다뤄질 예정입니다. 특히 기존 한경연 회원사로 남아 있었던 4대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명시적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새로 출범하는 한경협으로 자동 승계됩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 앞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SK·현대차·LG 실질적 활동은 시일 걸릴 듯...복귀 선행조건 내걸 전망
 
SK, 현대차, LG는 한경협으로 회원 자격이 이관되는 데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내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삼성 준감위가 '정경유착으로 물의를 빚는 상황이 발생하면 탈퇴한다'는 조건을 내건 만큼, 다른 그룹들도 이와 비슷한 조건을 검토할 가능성이 흘러나옵니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1위인 삼성이 재가입 테이프를 자른 상황에서 다른 그룹들의 복귀는 사실상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며 "다만 정경유착 우려가 여전한데 재가입을 위한 전경련의 쇄신이 선행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현대차나 LG의 경우 한경협 활동 여부는 혁신안 등을 감안해 결정하겠다는 기류가 읽힙니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도울 일 있으면 돕겠다"고 언급한 만큼 복귀 가능성이 높게 점쳐집니다.
 
이에 따라 삼성 등 4대 그룹이 형식적으로는 전경련에 재가입하는 모양새를 취하겠지만 실질적으로 활동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전경련이 아직까지 '최순실 국정농단 연루', '재벌 집단의 정치적 로비창구' 등 이미지가 큰 상황인데, 국민적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복귀할 명분이 없단 겁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 위원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복귀 재논의를 위해 열린 임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8일 오전 서울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 준감위 "정경유착 단절이 가장 큰 논의 대상" 
 
삼성도 이러한 국민적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전경련에 복귀할 경우 정경유착 발생 시 즉시 탈퇴할 것을 전제로 달았습니다. 전경련 혁신 의지 등 정경유착 재발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요.
 
이찬희 준감위원장은 지난 18일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임시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만약 가입했을 경우 전경련의 정경유착 행위가 지속된다면 즉시 탈퇴할 것을 비롯해 운영과 회계의 투명성 확보 방안 등에 대해 철저한 검토를 거친 뒤 결정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위원장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정말 완전히 단절할 수 있는가가 가장 큰 논의의 대상이었다"며 "전경련의 인적 구성과 운영에 정치권이 개입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 사항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의 전경련 혁신안은 단순히 선언에 그칠 뿐이고 실제로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스러운 입장으로 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며 "위원회는 근본적인 우려를 표명했고 이사회와 경영진에서 (재가입은) 구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전경련 복귀 여부는 삼성 각 계열사의 이사회와 경영진이 최종 결정할 문제라는 얘긴데요. 각 계열사가 전경련 복귀를 결정하더라도 정경유착이 발생할 경우 즉시 탈퇴할 것 등을 권고했다고 재차 강조한 겁니다. 권고안에는 정경유착 위반 시 즉시 탈퇴하는 것 외에 다른 조건도 담겼으나, 준감위는 나머지 권고 내용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정권교체 염두 둔 전략…"정치권과 불가근불가원 선택" 
 
준감위의 권고를 두고 정권교체까지 염두에 둔 삼성의 전략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나옵니다. 정권과 코드는 맞추되 언제든 탈퇴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둬 정권 변화에 따른 부침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고육지책인 셈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그간 정치적 부침으로 겪은 만큼, 윤석열정부가 힘을 실어주는 전경련에 보폭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경 유착 재발 방지'를 단서로 단 건 정권이 바뀔 경우를 대비한 보험용"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이어 "이재용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수감생활을 한 건 그룹 전체에 충격이었을 것"이라며 "삼성 입장에선 정권과 불가근불가원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재계에선 전경련 총회에서 류 회장 선임이 완료되면 4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기업과 접촉해 본격적인 한경협 활동을 유도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경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는 게 넘어야 할 과제 중 하나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4대 그룹이 아무런 쇄신 없는 전경련에 재가입할 경우 정경유착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참여연대는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재벌공화국으로의 복귀'를 공개 선언한 것"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