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하면서 반도체 업계에 숨통이 틔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 보조금 신청이라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K칩스법에 따라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기업이 설비투자를 할 때 대기업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35%의 투자 세액공제 혜택을 받게 됩니다. 법안 통과로 국내 기업들이 많게는 수백조원을 설비투자에 쓰는 부담을 덜게 될 전망입니다. 한숨을 돌렸지만 미국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 조건을 까다롭게 요구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막판 고심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미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해 지난달 31일(현지시각)부터, 나머지 반도체 공장과 패키징 등 후공정 시설에 대해서는 6월26일부터 보조금 신청을 받습니다.
반도체법 서명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보조금 신청 여부 한미 정상회담 이후 관측
보조금 신청 여부와 그 시점이 언제가 되느냐가 관심사로 떠올랐는데요. 업계 안팎에선 반도체 기업들이 윤석열 대통령 방미 이후 종합적인 판단을 거쳐 결정을 낼 것이란 가능성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반도체법과 인플레 방지법(IRA) 등 우리 기업의 불이익 방지와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는 등의 성과가 도출되는지 신중히 검토한 후 보조금 신청 여부를 결정짓지 않겠냐는 얘깁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보조금 독소조항 때문에 신청을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가장 민감한 조항으로는 수율 정보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 꼽히는데요.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들에 생산시설의 수익성 지표를 단순 숫자가 아닌 엑셀 파일로 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웨이퍼 수율을 비롯해 분기별 생산 능력과 가동률, 수익 전망, 핵심 소재, 제조 비용 등을 세세히 엑셀 파일에 기록해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반도체 업계에선 기업 경영 침해 및 기술 유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 기업 뿐 아니라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도 보조금 지급 조건이 과하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대만반도체산업협회가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미 반도체법과 관련해 "받아들일 수 없는 일부 조건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아직 그들(미국 정부)과 논의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조건들을 조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계속 미국 정부와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보조금 지급에 붙은 특정 제한이 미국의 잠재적 동맹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고도 언급했습니다.
SK하이닉스, 패키징 시설 추진…6월 이후 신청할듯
삼성전자의 경우 내년 가동을 목표로 미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공사에 돌입한 만큼, 조만간 입장을 정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경쟁업체인 TSMC와 인텔의 신청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벌고, 한미 정상회담 등 사후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대응 방향을 정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후공정) 제조시설과 연구센터 등을 짓겠다고 발표만 한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좀더 여유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에 따라 그 시기가 6월26일 이후가 될 전망인데요. 다른 기업들의 보조금 신청 여부를 지켜볼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국 반도체 보조금 신청 계획에 대해 "많이 고민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박 부회장은 "엑셀도 요구하고, 신청서가 너무 힘들다"면서도 "패키징이어서 전체 수율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 실제로 그 안에 (전공정) 공장을 지어야 하는 입장보다는 (부담이) 약간 덜 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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