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간밤에 미국에서 소비자물가지수 발표하고 다음날, 부동산 중개업소 세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주말마다 이사할 집 알아보러 다니고 있는데 가격이 안 맞아서 원하는 가격대 매물 나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그동안 조용하더니 몇 주가 지나서 갑자기 나왔다는 거예요. 그것도 같은 날에 다른 동네 중개업소 세 곳에서. 우연이겠지만 혹시 미국 물가 나온 것 보고 금리가 다시 오를 거라 생각해 가격을 낮췄나 싶고, 아무튼 기분이 묘했어요.”
금리 향방의 힌트가 될 1월 미국 소비자물가(CPI)가 나왔습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노동부는 1월 CPI가 전년 동월 대비 6.4% 상승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소비자물가 항목 중 에너지와 음식료를 뺀 근원CPI는 같은 기간 5.6% 올랐습니다. 전월 대비로는 0.5%, 근원CPI는 0.4% 상승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7개월 연속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상승률의 낙폭이 둔해진 것이 확연해졌습니다. 이제는 다음 달에도 전년 대비 하락을 이어갈지 알 수 없게 됐죠. 무엇보다 시장의 예상치(컨센서스) CPI 6.2%, 근원CPI 5.5%보다 높았다는 것이 우려를 키웠습니다.
물가·소매 기대 못미쳤는데 주가 상승
이 때문인지 노동부 발표가 있었던 시각 미국 증시는 상당한 변동성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그날을 복기해 보죠.
미국 증시에서도 나스닥지수는 성장기업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금리에 민감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시장에 유동성이 충분해야 미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요.
13일(현지시각) 나스닥은 1.48% 상승한 1만1891포인트로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14일엔 노동부 발표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나 봅니다. 개장 초 1만1800선 아래로 하락했거든요. 기대가 컸는지 CPI가 나오기 직전엔 1만1969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상을 벗어난 결과가 나오면서 하락 전환, 곧바로 1만1800선 아래로 다시 추락합니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인데, 오래지 않아 반전이 시작됐어요. 오전 11시40분 무렵부터 반등을 시작해 오후 내내 올랐고 결국 오전의 고점보다 높은 1만1960포인트로 마감한 것입니다. 이날 나스닥은 0.57%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이같은 흐름은 다음날에도 이어졌습니다. 15일 미국 상무부는 1월 소매판매가 전월보다 3%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들의 전망치인 1.9%를 크게 뛰어넘은 것입니다. 지난해 12월과 11월만 해도 소매판매는 1%대 감소를 기록했거든요.
항목별로 보면 음식료(7.2%), 자동차 및 부품(5.9%), 가구(4.4%) 소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미국인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어서 물가가 오르면 대출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소비 여력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덜 입고 덜 먹고 덜 쓰죠. 그런데 쓰는 돈이 늘어난 겁니다.
소비가 증가했다는 것은 실물경제에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죠. 물가가 오를 요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가는 올랐습니다. 15일 나스닥은 하루 전처럼 똑같이 하락 출발했다가 조금씩 고개를 들어 점심 무렵에 상승으로 돌아섰고, 결국 1만2000선을 뚫고 0.92% 오른 1만2070포인트로 마감했습니다.
연준 고금리 유지 명분 실려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았다, 소매판매가 증가했다, 일자리가 크게 늘고 실업률은 54년만에 최저치였다는 지난주의 소식까지, 이같은 주요 지표들의 결과값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릴 유인이 커졌다는 의미로 연결됩니다. 애초에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한두 번 더 올릴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이로 인해 금리를 추가로 올리거나 보폭을 키울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죠. 그게 아니라도 높은 수준의 금리를 시장이 기대하는 것보다 오래 유지하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월가 전문가들은 이 발표가 예상에 부합했다고 분석했는데 시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봅니다. 미국채 3개월물 수익률은 현지시각 13일 4.778%에서 14일 4.786% 장중 4.831%까지 올랐다가 4.786%로 내려왔습니다. 15일엔 4.773%로 안정되는가 했는데 16일 다시 4.7966%로 4.8%에 바싹 다가섰군요. 4.8%는 이 채권의 최고가 수준입니다.
매파로 분류되는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월 CPI 발표 후 한 방송에서 “인플레이션이 정상화되고 있지만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라며 “우리가 원하지 않는 훨씬 더 오랜 관성과 지속성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미 금리차 확대…환율·물가 자극
물가 상승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월에 전기·가스·수도요금이 오른 고지서를 받아들고 충격을 받았다는 가구들이 많았습니다. 1월 한국의 CPI는 5.2%였습니다. 작년 6%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높은 물가로 힘겨워하고 있어요.
이렇게 물가가 높은데도 우리는 미국처럼 금리를 올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죠. 대출금리가 높아 서민들이 힘들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데다 한편에선 은행들이 역대급 실적을 올려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압박하고 있거든요.
다음주 목요일(23일) 올해 첫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립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은이 금리를 올릴 수 있을까요? 올리지는 못하고 동결하는 것만으로 최대한 물가를 방어하는 거라 여길 겁니다.
문제는 다음번 4월 금통위 통화정책 회의가 열리기 전에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예정돼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몇 가지 지표만 봐도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연준이 베이비스텝을 밟는다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4.75~5.00%가 되겠죠.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 3.50%와 금리차가 1.50%포인트로 벌어지고요. 2000년 이후 최대라는군요.
이런 전망이 원달러환율을 밀어올렸습니다. 이달 2일만 해도 1220.30원이었던 환율이 16일 1284.80원으로 올랐습니다. 2주만에 5.28%나 급등했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도 따라 오르게 됩니다. 물가 상승을 부추겨 가계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됩니다.
앞에서 보여준 사례는 최근의 변화가 자산시장 구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물가가 뛰고 금리가 오르는데도 주가가 강하다고 좋아할 것은 아닙니다. 경제주체들의 부담이 커지면 결국 주식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변동성이 다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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