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수년간 내리막길을 걸어온 공모펀드 시장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새로운 펀드가 등장합니다. 한국의 가치투자 대중화를 이끈 VIP자산운용이 처음 선보이는 1호 공모펀드입니다. VIP의 대표 사모펀드들을 두루 담았는데요. 그들의 행보를 지켜본 금융투자업계와 투자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VIP자산운용이 공모펀드를 출시한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첫 번째 공모펀드답게 이름도 ‘더퍼스트펀드(VIP The First)’입니다.
VIP더퍼스트펀드가 화제가 된 건 펀드 운용 결과 투자손실이 발생할 경우 일정 수준까지 보장해준다는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10%까지 운용사가 손실을 떠안겠다고 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펀드 수익이 15% 이상 발생하는 경우엔 15%를 초과하는 수익의 35%를 운용사 몫으로 가져간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사모펀드의 성과보수를 닮았네요. 하지만 성과보수를 떼는 사모펀드도 손실을 보상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파격적인 조건임엔 틀림없습니다.
예를 들어 펀드수익률이 –20%일 경우 펀드 투자자의 최종 수익률은 -11.1%가 되고, 수익률이 -30%일 땐 투자자는 -22.2%로 손실이 줄어들게 됩니다. 반대로 펀드가 30% 수익률을 올렸을 경우 투자자는 25.8%만 챙길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VIP운용이 자기 돈으로 VIP더퍼스트펀드 투자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단 일반 투자자를 선순위로, VIP는 후순위 투자자로 설정했습니다.
모두가 손실 보상에 주목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이 펀드가 어떻게 운용될 것인가입니다. 그 내용을 미리 엿볼 수도 있습니다.
VIP자산운용은 현재 다양한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상품이 최준철 대표가 직접 운용하는 그로스(Growth)펀드와 고배당펀드, 공동대표인 김민국 대표의 밸류(Value)펀드, ESG펀드입니다. 최 대표는 성장하는 기업에 장기투자하는 스타일이고, 김 대표는 정통 가치투자를 지향하되 분기실적, 턴어라운드, 배당 등 촉매를 중시합니다.
이들 외에도 조창현 매니저가 운용하는 올시즌(All Season)펀드, K컨슈머펀드, 박성재 매니저의 K리더펀드 등 총 7개 사모펀드로 구성돼 있습니다. VIP운용에서는 최 대표와 김 대표가 얼굴격이지만, 사모펀드 시장에서는 다른 두 매니저도 이미 스타급이라고 하는군요. 조 매니저는 특정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는 투자를, 박 매니저는 성장산업 투자를 맡고 있습니다. 서로 스타일은 달라도 오랜 기간 함께 가치투자철학을 공유하며 투자하고 있습니다.
7개 펀드는 연환산 13%에서 23%까지 빼어난 성과를 기록 중입니다. 그럼에도 투자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목표수익률을 설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25% 수익률에 도달하면 주식비중을 100%에서 50%로 줄여 만기까지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VIP더퍼스트펀드가 공모펀드지만 폐쇄형이라는 점입니다. 모집금액 300억원이 차면 문을 닫고 출발합니다. 운용 예정일(2024년 말)까지 1년10개월 동안 환매도 추가 납입도 불가능합니다. 폐쇄형 펀드인만큼 수익증권이 주식시장에 상장될 예정인데 덩치가 작아서 거래가 매우 적겠죠. 아예 내년 말까지는 현금화 못한다고 각오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참고로 운용기간을 내년 말까지로 정한 이유는 2025년으로 미룬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때문이라는군요. 제도가 변하면 운용사가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지겠죠.
펀드 사이즈가 300억밖에 안 되는데도 1호, 2호로 나뉘어 운용됩니다. 특정 투자자의 비중이 각 사모펀드 자산의 50%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7개 펀드를 품고도 150억원씩 둘로 나눈 겁니다.
형식상의 문제일 뿐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은 VIP더퍼스트펀드를 통해 VIP운용의 다양한 사모펀드를 동시에, 그것도 사모펀드 최소가입 기준 5억원이 아니라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됐습니다.
VIP운용은 3개월쯤 뒤에 중도환매와 추가 투자가 자유로운, 만기 없는 개방형 공모펀드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이때 연금계좌에 담을 수 있게 연금클래스도 만들 예정이라네요.
최준철 대표는 “언제부터 섹터 ETF 바꿔가며 연금을 운용하게 됐는지 개탄스럽다”며 “번번이 양치기 소년에게 속아 떠난 투자자들이 (액티브)펀드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제대로 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최 대표는 “그래서 우리에겐 이번 1호 펀드의 성과가 중요하다”고 말한 뒤 “거꾸로, 지금 이 펀드를 출시하는 것도 자신감이 있어서다. 우린 8년만에 가치투자 전성기가 올 거라 보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VIP더퍼스트펀드의 총보수는 A클래스 기준 연 1.26%입니다. 사모펀드에서 발생하는 보수를 포함한 것입니다. 별도로 선취수수료 1.0%가 부과됩니다. 상장지수펀드(ETF)보단 높지만 일반 공모펀드에 비하면 양호합니다. 선취수수료 0.5%, 총보수 연 1.16%인 인터넷전용 A-e클래스도 준비했는데 판매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덩치가 작아 판매사 입장에선 A-e클래스까지 넣기가 쉽지 않겠죠.
VIP더퍼스트펀드는 오는 13일부터 23일까지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유안타증권에서 선착순으로 판매됩니다. 펀드 규모가 크지 않아 투자할 생각이 있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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