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중 가장 존재감 없다고 평가받던 김대기 실장이 대통령실 군기반장으로 변신했다. 김 실장은 지난 13일 윤석열정부 들어 처음으로 대통령실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회를 열고 기강 잡기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실장이 '기회는 드릴 수 있지만, 보장은 해줄 수 없다'는 말을 다시 한 번 하셨는데 식은 땀을 흘릴 뻔했다"며 긴장감이 흘렀던 조회 분위기를 전했다. 김 실장은 지난 7일에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인용한 바 있다.
김 실장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조회에서 "눈에 보이는 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다"라며 "어디서 '짱돌'이 날아올지 모르니 항상 철저히 리스크를 점검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여러분 모두 대통령이 돼라"고 했다. 인적개편도 마무리된 상황에서 대통령실 참모진 모두가 대통령이라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직무에 임하라는 주문이었다.
김 실장은 "대통령실 근무가 다섯 번째인데, 이렇게 여건이 나쁜 적은 없었다"며 경제 위기와 여소야대의 정치적 환경도 언급했다. 새정부 출범 후 넉 달을 "마치 4년 같았다"는 솔직한 토로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20%대로까지 추락했고,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집권여당은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으로 지도부 공백 사태가 장기화됐다. 지역별로는 영남, 세대별로는 60대 이상의 전통적 지지층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 그의 한숨도 덩달아 늘어만 갔다.
대통령실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윤 대통령이 매일 출근길에 기자들 앞에 서는 도어스테핑(약식회견)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히면서 김 실장은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윤 대통령이 자칫 감정을 자제 못하고 속내를 털어놓으면 수습에 전력해야 했다. 게다가 대통령실은 윤핵관 라인, 검찰 출신 라인 등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들이 뒤섞이며 통제 불능의 제 멋대로 상황까지 연출했다. 보안에 신중해야 할 대통령실 내부정보까지 실시간으로 윤핵관에 전달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지난 7월 불쑥 기자들 앞에 나서 "저 누군지 아냐"며 "하도 존재감이 없어서"라고 셀프 디스까지 했던 그였다.
그의 고백처럼 존재감 없던 김 실장은 추석 전 마무리된 대통령실 인적개편 과정에서 비서실장으로서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윤핵관 라인을 중심으로 실무진 50여명이 대폭 물갈이 되면서 검찰 출신 인사들과도 적절히 호흡을 맞췄다. 윤 대통령의 재신임도 확인됐다. 14일 복수의 관계자들은 "대통령께서 처음에는 혼선이었다고 치고, 이제라도 김 실장 중심으로 새로 진용을 짜서 한 번 제대로 해보라고 힘을 실어줬다"며 "김 실장을 바라보는 내부 시선도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김 실장도 2기 대통령실을 맞아 각오를 다지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는 "대통령실은 두 개만 잘하면 된다. 정무와 홍보"라고 언급, 그간 문제점을 노출했던 정무와 홍보를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사진=연합뉴스)
다만 김 실장의 장악력이 더 이상 확대되기는 어렵다는 시선도 있다. 김 실장은 이명박정부 청와대 마지막 정책실장을 지낸 친이계 인사로 분류된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안정감은 있지만 개혁을 주도하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도 상존한다. 때문에 실질적인 주도권은 야권이 '육상시'로 규정한 검찰 출신의 윤재순 총무비서관, 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강의구 부속실장에 있다는 해석도 더해졌다. 이들 모두는 과거 검찰에서 윤석열 사단으로 불렸던 윤 대통령의 최측근들이다. 한 관계자는 "누가 봐도 힘의 무게 추는 검찰 라인에 쏠렸다"며 "김 실장으로서는 이들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김 실장의 적극적인 변화와 개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김대중(DJ)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김 실장이 120일 만에, 4개월 만에 처음 조회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저도 비서실장을 했지 않느냐. 매월 조회를 한 번씩 했다. 120일 만에 처음 했으니까 기밀을 밖으로 유출하고 그 꼴 아니었냐"고 내부 기강의 해이를 지적했다. 박 전 원장은 또 김 실장의 '짱돌' 발언에 대해 "권력·사정기관은 늘 외부로부터 짱돌도 날아오고 유혹도 많다"며 "김 실장이 하신 말씀보다 대통령실에서 50여명의 비서관·행정관이 100일 만에 다 바뀐다, 누가 추천했고 누가 검증했고 누가 공직기강을 점검했느냐, 이런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림자 수행을 해야 하는 사기업 회장 비서와는 전적으로 다르다"며 "각종 현안에 대통령 대신 나서서 총을 맞겠다는 각오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데, 관료 출신인 김 실장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또 "대통령이 만기친람하게 되면 참모진은 단순 비서로 전락하게 된다"는 뼈 있는 말도 남겼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비서실장은 때로는 반대편의 쓴소리도 듣고 대통령에게 직언해야 된다"며 "이를 통해 전체적인 정부의 균형을 잡는 역할이 대통령실 본연의 업무"라고 조언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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