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으로 주택 매수세가 꺾이면서 재개발·재건축 단지 보류지도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그동안 입찰에 성공하기만 하면 무조건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숨겨진 로또’로 불렸지만, 집값 고점 인식이 팽배하고 매수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면서 분위기가 바뀐 모습이다.
13일 서울시 정비사업포털에 따르면 올해 8월부터 현재까지 최근 한 달 간 서울에서는 서초와 사당, 은평 등 6곳의 주택재개발·재건축정비사업 조합이 보류지 매각 공고를 게시했다.
보류지란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조합원 물량의 누락·착오·소송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분양하지 않고 유보한 것으로, 통상 완공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 조합의 재량으로 일반에 입찰방식을 통해 판매한다.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 모습.(사진=백아란기자)
입찰은 조합 측이 정한 최저입찰가를 기준으로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낙찰을 받는 방식인데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에 새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어 '틈새 로또'로 꼽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부동산 경기가 약세장으로 돌아서면서 보류지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동산 거래가 메마르면서 최악의 ‘거래절벽’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만 올해 7월 4529가구가 미분양되는 등 연초(1325가구)이후 7개월째 미분양 단지도 속출하고 있어서다. 경매 시장도 하락세가 짙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은 전월(90.6%) 대비 4.7%포인트 하락한 85.9%로 2019년 9월(84.8%)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집값의 선행지표라 불리는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도 힘을 못쓰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몸값을 낮춘 보류지도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실제 지난 7일 서울 노원구 ‘태릉 해링턴플레이스’ 보류지에 대한 매각 공고를 낸 태릉현대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전용면적 59㎡의 최저 입찰가격을 9억원으로 제시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는 올해 3월 내놓은 입찰 기준가보다 3000만원 낮은 수준이다. 태릉현대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 3월부터 10차례에 걸쳐 조합보유분 아파트 매각을 공고했지만, 현재까지도 물량을 소진하지 못했다. 조합보유분 토지(임야·285㎡) 역시 3차례 매각 공고를 냈지만 아직 남은 상태다.
입찰기준가격이 당초 7억2000만원에서 5억2000만원으로 2억원 낮아졌어도 팔리지 않은 것이다. DL이앤씨(구 대림산업)와 롯데건설이 지은 은평구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 또한 지난 6월 10억3000만원에 판매되지 못하고 지난달 9억3000만원까지 몸값을 낮췄다.
반면 서초우성1차아파트 주택재건축조합은 삼성물산이 시공한 ‘래미안 리더스원’의 보류지를 지난해부터 매각하고 있지만 주변 시세에 맞춰 오히려 가격을 33억원(전용114.7㎡)에서 38억원으로 올리면서 잇달아 유찰됐다. 이밖에 용두5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과 북아현 1-1 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 사당2 주택재건축 조합 등도 보류지 매각을 공고했다.
한편 시장에서는 부동산 시장 하방 경직성이 높은 만큼, 조합이 최저 입찰가를 낮추지 않는 한 보류지 매각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주택 가격이 오를 때는 보류지 매각이 상대적으로 수월할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부동산 시장에서 보류지만 별개로 놓고 볼 수 없다”라며 “경매에 대한 낙찰가율이라든지 청약 경쟁률·금리라는 변수가 있고, 주택 가격이 조정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보류지 매각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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