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지난 한해 국내 산업계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의 충격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크게 휘청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지속된 가운데 중국발 요소수 품귀사태까지 터졌다. 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산업계는 향후 공급망 리스크가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수입 다변화와 공급망 강화에 주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4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니켈의 톤당 가격은 지난 7일 기준 4만2995달러(약 5312만원)로 전년 대비 132.5% 폭등했다. 역대 최고가다. 10일까지도 가격 변동 없이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평균 가격보다 77.8%, 전주보다는 57.7% 각각 상승했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전경.(사진=현대오일뱅크)
한국자원정보서비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공급차질 우려가 가격 상승 폭등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은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들이다. 전 세계 니켈의 약 10%가 러시아에서 나온다.
니켈이 주요 원자재인 배터리 업계에서는 최근의 가격 폭등이 전기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수요 둔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배터리 생산 비용의 70~80%가 원자재로 주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배터리 가격도 동반 상승하게 된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주요 광물을 중국, 호주, 남미 등에서 수입하고 있어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당장의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면서도 니켈 가격 폭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자원 확보를 잘해야 사업의 글로벌 확장이 용이한데 현재는 자원이 국가, 업체에 의해 굉장히 좌우된다"며 "광산 채굴권 등 개별 기업이 투자하기 어려운 것을 정부가 지원해주면 투자 여력이 생겨 사업의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종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여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 가격도 치솟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한 에너지 수급 불안에 국제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생산하는 만큼 유가 상승은 나프타 가격 상승과 직결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페트로넷을 보면 지난 7일 기준 나프타 가격은 배럴당 128.71달러까지 올랐다. 2012년 3월 12일 기록한 직전 최고가격(121.74달러)을 넘어섰다. 페트로넷이 나프타 가격을 집계한 1995년 이후 최고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가 러시아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한 품목은 나프타(25.3%)이다. 두 번째는 원유(24.6%)였다.
문제는 러시아산 나프타의 수입이 제한될 경우 약 4분의 1에 해당되는 물량을 다른 곳에서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산 나프타를 많이 쓰는 업체의 경우 적기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원가 부담이 커지자 최근 정부에 한시적으로 나프타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는 '긴급할당관세'를 요청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나프타는 디스플레이, 배터리에 들어가는데 개별 기업이 공급받도록 광산망을 마련하고 국가차원에서 광물 수급에 더 신경을 써달라"고 말했다.
공급망 이슈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누르고 세계 공급망 최대 악재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대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는 별개로 LG경제연구원은 '2022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공급 차질이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올해도 원자재 공급 차질이 수시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 수급 문제가 리스크로 대두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산업의 기초인 석유화학부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까지 정부가 상황을 모니터링 하는 수준을 넘어 주요 자원 비축분 확대와 수입 다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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