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1인 가구를 오래해 ‘혼밥’이나 혼자 지내는 게 적응됐다고 여겼는데 코로나 이후 일상이 단절되고 사람을 못 보니 어느 새부터 불안과 무기력으로 힘들었어요.”
서울 동작구에 혼자 사는 30대 여성 이진희씨는 회사도 다니고 강사로도 일하면서 자신을 배려심 많고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무너지며 좋아하던 고기도 멀리하게 되고, 기다리던 벚꽃이 펴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며 우울증에 빠졌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19로 비자발적인 휴직 이후 기약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자 더욱 심해졌다.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조금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더이상 스스로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씨와 같은 1인 가구의 고립감과 우울감을 해소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서울시는 작년부터 1인 가구 상담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조사에서 서울 1인 가구의 23.3%가 외로움으로 힘들다고 응답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해지는 추세다.
전문 상담사들이 멘토를 맡아 진행하는 개인·그룹 프로그램은 심리검사부터 영화감상·반려식물 키우기·사진 촬영·독서 공유·음악 공유·생활 노하우까지 다양하다. 멘티에 맞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정서적 안정 속에 멘티의 고민을 해결해 사회적 관계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작년 4개월간의 상담 멘토링 프로그램에 3개 자치구에서 1인 가구 44명이 참여했으며, 92.4%의 만족도를 나타냈다. 서울시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올해 확대해 120명의 1인 가구에게 심층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서울시 1인 가구 상담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1인 가구 청년이 멘토와 함께 책을 만들고 있다. 사진/서울시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이씨는 프로그램을 신청하면서 비대면 상담도 가능하고, 멘토링 방식으로 이뤄져 무겁지 않게 참여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가졌다. 멘토로 이어진 상담사와는 모두 8회에 걸쳐 이씨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매주 토요일 저녁 시간에 만났다.
매회 약 50분에 걸쳐 이뤄지는 상담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이씨의 감정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수차례의 상담을 거치며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배려만을 미덕으로 알던 이씨는 점점 자신의 예민함에 눈뜨게 됐고, 사소한 커피취향부터 시작해 그동안 귀기울인 적 없던 자신을 인정하며 불안·불편 대신 편안함을 느꼈다.
이씨는 “요즘의 나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그대로다”며 “사는 게 아주 조금은 즐거워졌고 내 마음이 편안하니 내일 무슨 일이 더 닥쳐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얘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외로움 때문에 위기에 처한 1인 가구들이 극복하고 다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라며 “일반적인 상담 프로그램과 달리 멘토·멘티 관계 속에서 멘티의 감정과 생활 변화에 대해 나누며 유대감을 형성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1인가구 안심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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