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 포퓰리즘 멀리하는 사람들 공통점?
스위스 연구팀, ‘불확실성 마인드셋’ 연구
극우에 맞서 민주주의 강화할 대안점 제시
2025-11-25 11:12:19 2025-11-25 14:46:26
세계적으로 선진국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유럽에 불안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중산층과 청년층에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난민과 이주민들의 유입으로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고 있으며 기후 위기와 3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감 속에서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가파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은 금년 총선에서 독일연방의회(Bundestag)의 제1야당으로 부상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인 오스트리아 자유당(FPÖ)이 2024년 9월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되었습니다.
 
독일 AfD는 난민과 외국인 이주자들의 재이민, 사실상 추방을 지지하는 정당이다. 지난 2월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로즈 먼데이 퍼레이드를 앞두고 일론 머스크 당시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독일대안당(AfD) 알리첼 바이델 대표와 시소 타는 모습의 퍼레이드 조형물이 공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 득세
 
스웨덴의 우파정당인 스웨덴 민주당도 최근 총선에서 스웨덴 의회(Riksdag)의 제2당으로 올라섰습니다. 포르투갈에서도 진보적인 정치세력을 향한 “이제 그만(Chega)”이라는 외침을 당명으로 삼은 극우 정당이 빠르게 세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헝가리 등에서도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의 약진은 두드러집니다.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정당들은 일반적으로 이민·난민 배척, 문화적·민족적 동질성 강조, 유럽연합(EU)같은 다자주의에 대한 회의적 태도, 민중 대 엘리트(people vs elite) 대립 같은 포퓰리스트 담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한 심리학 연구는 이러한 포퓰리즘의 상승에 지극히 인간적인 변수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 Zürich) 심리학과 구델라 그로테(Gudela Grote) 교수 연구팀이 <성격 및 사회심리학 회보(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에 발표한 논문 ‘불확실성 사고방식이 다양성 태도 형성에 미치는 역할, 그리고 사회 변화에 대한 공약 및 우익 포퓰리즘 투표에 미치는 영향’은 불확실성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mindset)이 포퓰리즘 상승에 강력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정말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되는가?”라는 한 가지 단순한 질문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2024년 12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독일에서 수행되었습니다. 연구팀은 2025년 2월에 치러진 독일 의회 선거 기간을 의도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선거에서는 이민·난민 정책, 소수자 통합과 같은 이슈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은 이런 분위기가 실험의 실제적 맥락을 제공했습니다.
 
실험군에는 총 391명, 대조군에는 354명이 참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18세에서 80세 사이였으며, 교육, 성별, 소득, 사회적, 지리적 배경에서 독일연방공화국 전체를 대표했습니다. 실험군에는 ‘불확실성을 기회로 보는 태도(uncertainty-as-opportunity mindset)’를 유도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평균 7.5분 동안 보여주었습니다.
 
11장의 슬라이드로 구성된 이 자료에는 애플의 창업자이자 혁신적 엔지니어인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12일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인생에서 불확실한 길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을 포함해 불확실성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례를 보여주는 텍스트, 그래픽, 사진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개입은 실험군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모든 피실험자들에게 같은 내용과 문항의 설문지에 응답하도록 한 결과, 실험군은 대조군에 비해 다양성에 대해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주민·외부 집단과의 접촉에 부담을 덜 느끼며,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한 노력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특히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7~8분의 의도된 자료 시청만으로도 사람들의 가치와 태도, 그리고 투표 성향까지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하는 스티브 잡스. 그는 불확실성을 기회로 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여기서 말한 “만족하지 마세요. 불확실한 일에 계속 도전하세요(Stay hungry. Stay foolish)”는 불확실성을 긍정하는 상징적 표현이 되었다. (사진=스탠퍼드대)
 
불확실성이 ‘위협’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단순한 해답을 원합니다. 심리학에서 불확실성은 흔히 ‘위협 상태(Threat State)’를 유발합니다. 경제위기, 사회불안, 기후변화처럼 예측하기 어렵고 통제하기 힘든 상황은 인간의 마음을 위축시키며 ‘안정적이고 단순한 세계’에 대한 갈망을 키웁니다. 포퓰리즘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듭니다.
 
포퓰리스트 정당들은 복잡한 문제에 대해 “문제의 원인은 외부인이다”, “엘리트들이 나라를 망쳐놨다”, “국경을 막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같이 극도로 단순화한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며 불안한 대중의 심리를 파고듭니다. 그러나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찍기’와 같은 단순한 대응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현실을 해결하기는커녕 설명하지도 못합니다.
 
불안에 대한 태도, 정치 행동 영향
 
이번 연구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실험군의 태도만 바뀐 것이 아니라, 행동 의향(behavioral intention), 즉 사회참여와 투표 성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불확실성을 기회로 보는 사고방식이 다양성을 대하는 태도에 아래와 같이 순차적 경로로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습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 변화 ⇒ 사회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 ⇒ 새로운 시도에 대한 참여의지 증가 ⇒ 포퓰리즘에 대한 투표 감소  
 
즉, 정치적 선택이 단순히 이념이나 정당 충성도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정서적·인지적 해석의 방식’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프리젠테이션 자료 시청이라는 외부의 개입이 일회성이었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사고방식이 한 달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인 루리 타키자와(Ruri Takizawa) 박사후 연구원은 “설계를 응용해 이번 연구를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기후 위기나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태도가 변하는지 여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불확실성이라는 감정이 가변적이며,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불확실성에 대한 해석과 태도를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 민주주의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런 원리를 응용해 사회적 응집력을 강화하고 극단적 이념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정당에 대한 지지도를 낮출 수도 있습니다. 그로테 교수는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에 대한 생각과 대처 방식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고 이번 연구 결과에 조심스럽게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논문링크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01461672251386487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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