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어깃장에…G20 첫날부터 '반트럼프'
다자주의 복원 및 기후위기, '선언문 반영'…"글로벌 거버넌스 흔들"
2025-11-23 16:54:38 2025-11-23 16:54:38
[요하네스버그=뉴스토마토 한동인, 서울=차철우 기자] "동의 없는 정상선언에 반대한다"는 미국의 어깃장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초강수를 뒀습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정상선언문을 이례적으로 개회와 동시에 채택한 건데요. 미국이 반대하는 의제를 채택하는 등 '반트럼프' 기류가 뚜렷하게 반영됐습니다. 이는 사실상 미국 주도의 일방적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겠다는 '다자주의 복원'이 분명하게 드러난 겁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남아공 주도 이례적 '선언문'…정부도 동참 
 
오현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제3차장은 23일(이하 현지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마련한 한국 취재단 기자실에서 "보통 G20의 선언문은 회의 말미에 채택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예외적으로 이번에는 회의 첫 개막과 함께 채택이 됐다"며 "이미 셰르파 회의(의제 사전 조율 고위급 실무 회담)에서 타결된 내용인데, 그것을 빨리 공식화하고자 하는 의장국(남아공)의 의도가 있지 않았나"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22일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주도로 G20 회원국은 회담 시작 첫날 정상선언문 채택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G20 정상선언문은 다자주의 복원을 통해 글로벌 무역과 국제 협력 체제 강화 의지를 표명한 것이 특징입니다. 글로벌 경제의 안정성·공정 경쟁·예측 가능성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게 주요 골자입니다. 파리기후협정의 완전한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고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재정·기술 지원 확대를 명시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채무 문제도 주요 의제로 채택됐습니다. 각국 정상들은 채무 부담이 높은 국가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 제고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이밖에 글로벌 불평등 해소를 통해 빈곤·보건·교육 분야 국제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통상 다자 정상회의의 공동선언은 폐회일에 발표되는데요. 개회일에 정상선언문이 채택된 이유는 미국에 맞선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번 선언문에선 미국이 꺼리는 이슈가 다수 담겼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정상회의 세션에서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정부 원칙을 내세우며 동의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이 대통령은 세션1 회의에서 "성장 잠재력 제고를 위해 예측 가능한 무역 투자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능 회복은 우리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습니다. G20 정상선언문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압도적 과반으로 채택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써밋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뉴시스)
 
의도적 G20 의미 '퇴색'…다자주의 '기로'
 
이번 G20 정상회의에선 미·중·러 정상이 모두 불참했으며, '트로이카(G20 작년·올해·내년 의장국)' 일원(미국)이 정상회의에 아무 대표단을 보내지 않은 것은 처음입니다. 지난 1999년 G20 출범 이후 주요 3국 정상이 모두 불참하는 것 역시 이번이 처음입니다.
 
때문에 강대국 중심의 양자주의 외교가 부상하면서 다자협의체의 역할이 약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미국은 남아공의 인종정책 문제를 이유로 G20에 불참했습니다. 중국은 내치 우선 전략으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최근 강대국 정치의 부상으로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를 극도로 선호하지 않는다"며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G20이 다자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국제질서 붕괴를 막기 위한 일종의 공동 메시지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참석 대신 우크라이나 관련 평화구상을 논의하며 독자적 외교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최종 제안은 아니다"라면서도 "(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마음껏 전쟁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미국의 구상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협상안을 수용할지는 불투명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 양보 등이 이번 구상안에 담겼기 때문입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휴전을 강하게 거부하면서 전쟁이 장기화한 상황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관여를 강화하는 모습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G20 의제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선호하는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남아공이 중국·이란과 가까워지는 외교적 기류도 불참 결정을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요하네스버그=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서울=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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