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철 기자]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씨의 비상계엄 선포로 29조원 규모의 해외 투자사업이 무산되자 피해를 사업가가 대한민국 정부와 윤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3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키르기스스탄 정부와 29조원 규모의 스마트시티 개발사업을 추진해온 안도현씨(키르기스스탄 국가고문)는 오는 25일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윤씨 개인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제기합니다.
키르기스스탄 605만평 49년 무상임차…29조원 프로젝트
안씨가 추진한 사업은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인근 부지 605만평을 49년 동안 무상으로 임차, 의료 스마트시티를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총 사업비는 200억달러(약 29조원)로 추정됩니다.
안도현씨가 키르기스스탄 이시쿨 호수 인근에 조성할 예정이었던 의료 스마트시티 개요도. (이미지=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가 확보한 투자협약서에 따르면, 안씨가 이끄는 한국 컨소시엄은 지난해 6월18일 키르기스스탄 정부와 투자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내각 8개 부처와 총리가 승인한 뒤 이식쿨 주지사와 도리안솔루션스(안씨 소속 법인) 간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당시 안씨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서기관 등을 역임한 스마트시티 개발 전문가로 인정받아 키르기스스탄 정부로부터 국가고문으로까지 임명됐습니다.
안씨가 추진한 사업의 핵심은 병원, 학교, 주택, 리조트, 스포츠시설 등을 갖춘 스마트시티를 건설하고 2050년까지 5만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한국인프라공사(KIND)가 마스터플랜을 작성했으며, 한국 굴지의 건설사와 엔지니어링사 등이 참여 의향을 밝혔습니다.
안씨가 키르기스스탄에 스마트시티를 만들려고 한 건 이 나라가 국토 면적에 비해 개발된 곳이 아직 많지 않아서 였습니다. 자체 개발 역량도 다소 미흡해 해외 자본과 기술의 힘을 많이 빌리는 상황이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29조원대 스마트시티 개발사업 무산 일지. (이미지=뉴스토마토)
정상회담 직후 '계엄'…"스마트시티, 10시간 만에 물거품"
사업은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지난해 12월2일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고, 3일 오후 윤석열씨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습니다. 양국은 경제·환경·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인 4일 오후 5시엔 서울 롯데호텔에서 스마트시티 관련 한국 컨소시엄과 키르기스스탄 정부 간 최종 협약체결식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자파로프 대통령과 키르기스스탄 외교부 장관, 한국 기업 대표들이 참석해 기존 계약에서 보완한 수정된 계약서를 체결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12월3일 밤 10시29분 윤씨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모든 게 무산됐습니다. 자파로프 대통령은 4일 오전 쫓기듯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4일 오후에 예정됐던 협약식 역시 취소됐습니다.
안씨는 "대한민국과 키르기스스탄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가 10시간 만에 윤씨의 계엄령으로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윤석열씨가 지난해 12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공식 방한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안씨, 해외 투자자들에게 투자금 반납…재기 '불가능'
계엄 여파는 즉각적이었습니다. 안씨는 앞서 지난해 11월4일 키르기스스탄 스마트시티 사업을 위해 호주의 한 재력가로부터 100억원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자파로프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더욱 보완된 계약을 체결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12·3 계엄 이튿날인 12월4일, 호주의 투자자는 안씨에게 투자금 전액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한국에서 계엄이 벌어졌고, 정치적 불안정까지 커졌기 때문에 키르기스스탄 사업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자 투자금 회수에 나선 겁니다. 결국 안씨는 100억원을 그대로 돌려줘야 했습니다. 이후 스위스, 영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키르기스스탄 사업에 참여할 의향을 밝혔던 투자자들도 모두 투자를 철회했습니다. 사업에 착수하기 위한 초기자본금은 2000억원을 목표로 했지만, 당연히 구하지 못했습니다.
안씨는 "해외에서 한국 기업, 한국 정부, 한국인 사업자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며 "수년간 수십억원을 투입해 마스터플랜을 작성하고 8개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계엄 하나로 모든 신뢰가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이어 "국가 고문으로서 키르기스스탄 정부와 쌓아온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며 "국가 신뢰를 잃어 재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전시·사변 상황에 외국 정상 초청?"…대한민국 신뢰 무너져
안씨가 윤씨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한 건 윤석열씨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 8차 공판에서 했던 발언 때문입니다.
앞서 지난 6월23일 공판에서 윤씨는 "6·25 사변이 발발하고 나서 상당기간 계엄을 선포하지 못했다"면서 "군이 계엄 사무에 투입될 정도의 여유가 없고 전쟁에 이겨야 하므로 막상 전쟁이 터지면 계엄을 못 한다"고 했습니다.
헌법에 따르면, 계엄은 '전시·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군사상 또는 공공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윤씨는 정작 전시·사변 땐 너무 정신이 없어서 계엄을 선포하기 어렵고, 그래서 전시·사변을 예상해서 계엄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을 한 겁니다.
이에 대해 안씨는 "그런 상황(전시·사변을 예상한 상황)이었다면 외국 정상을 초청하거나 대규모 투자사업을 논의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전시·사변 상황이라면서 외국 정상이 방한하고, 그러는 중에 계엄을 선포하는 건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1월 중순부터 방한을 준비하며 키르기스스탄 주한대사관, 외교부와 연락하는 과정에서 관련 설명을 일체 들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씨는 또 "윤씨의 행위는 단순 직무상 과실이 아닌 고의적 외교 파탄 유발 행위"라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상 권리를 지키고, 외교적 정의와 국가 신뢰 회복을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2·3 계엄은 개인의 손해를 넘어 대한민국의 국가 신뢰가 무너진 사건"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사업할 기회를 잃었고, 29조원 규모의 프로젝트가 무산됐다"고 했습니다.
김현철 기자 scoop_pres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