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한동인·유지웅 기자] 정부 업무시스템을 마비시킨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보증기간이 지난 노후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정보 시스템 이중화 조치를 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3년 전 비슷한 이유로 국민적 공분을 산 '카카오 먹통 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이러한 사건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이번 화재 사태가 인재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28일 국회 행정안전위 위원들이 화재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찾아 외부 침수조에 냉각작업 중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산망 마비에…금융·택배·행정업무 '차질'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국정자원 대전 전산실 화재로 멈춘 정부 전산시스템은 총 647개로, 이 중 436개가 국민이 직접 이용하는 인터넷망 서비스입니다. 여기에 211개가 공무원 업무용 행정내부망입니다.
이로 인해 △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우체국 △ 보건복지부 복지로·사회서비스포털 △행정안전부 정부24·국민비서·모바일 신분증·정보공개시스템·온나라문서·안전신문고·안전디딤돌 △조달청 나라장터·종합쇼핑몰 등이 가동 중단됐습니다.
이번 사고는 26일 오후 8시15분쯤 국정자원 5층 전산실에서 작업자 13명이 리튬배터리를 교체하던 중 배터리 1개에서 불꽃이 튀어 발화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 384개가 전소됐습니다. 총 647개의 정부 전산시스템 중 96개 시스템은 직접적 피해를 봤고, 551개는 안전 가동을 위해 선제 중단 조치했습니다.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면서 정부는 전산 시스템의 순차 가동에 나섰는데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50% 이상의 장비가 재가동에 들어갔습니다. 또 안정적인 전산시스템 운영에 필수적인 항온·항습기는 복구가 완료돼 정상 가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전산망 마비의 여파에 따라 은행권 비대면 계좌개설, 대출 심사, 본인 확인 등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주민등록증을 통한 본인확인 서비스가 중단된 영향입니다. 또 공공 마이데이터 서비스 자체가 중단되면서 대출 심사 등에도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때문에 일부 은행에서는 신용대출·주택담보대출 상품들이 신청 중단됐습니다. 또한 대면 창구 자체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에도 주택담보대출 등 일부 대출상품 심사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기에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업무도 차질이 빚어지면서, 일부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의 업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화재로 인해 납세 등 행정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각별히 챙기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인재 논란 이어지나…3년 전 '카카오 사태' 되풀이
이번 화재가 국가 전체 전산망 먹통 사태로 이어진 사실상 '인재'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미 2022년 카카오톡 먹통 사태와 2023년 11월 행정마비 사태를 경험하고도, 이중시스템 마련 및 전체 전산망 점검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한 영향입니다.
2022년 판교 데이터 센터 화재 당시 정부는 다중화 클라우드 서버 구축 등의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습니다. 2023년 11월에도 전산망 이원화 체계는 필수 대응책으로 요구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산망 먹통으로 이어진 건, 서버실과 배터리실이 한 공간에 위치했습니다. 또 정부는 1·2등급 정보시스템은 네트워크, 방화벽 등 모든 장비에 대한 이중화를 진행해 무중단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했지만, 이는 시범 사업 수행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카카오의 경우 먹통 사태 이후 재난복구 시스템을 데이터센터 3개가 연동되는 삼중화 이상으로 고도화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정부는 정작 재난에 대응하지 못한 셈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이중 운영 체계를 비롯한 근본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화재의 주원인으로 배터리 노후화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행안부에 따르면 화재 원인이 된 UPS용 배터리는 2014년 8월 국정자원에 납품돼 사용됐습니다. 제조사가 권장한 사용기간인 10년을 1년가량 넘긴 상태였습니다.
배터리 제품의 문제가 아닐 경우 작업자의 실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일각에선 2번의 이전 작업 때와 달리 이번 작업에서만 사고가 발생한 점 등으로 미뤄 인재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전산실에서 지하로 모두 4번의 배터리 이전 작업을 계획했고, 앞선 2번의 작업은 문제없이 이뤄졌지만, 3번째 이전 작업에서 불이 났는데요. 이에 행안부·국정자원 측의 설명과 달리 배터리 이전 과정에서 모종의 작업 실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원을 차단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다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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