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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공급 과잉, 중국발 저가 공세, 고유가와 환율 불안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이 가운데 롯데케미칼과 현대케미칼의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합 시도가 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일본은 지난 40년간 세 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며 고부가가치와 글로벌 확장을 중심으로 산업 경쟁력을 재편해왔다. 한국 역시 이를 벤치마킹하되 우리 산업 환경에 맞는 한국형 구조조정 모델을 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현주소와 과제, 해외 사례 비교, 제도적 개선책을 심층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대전환의 기로에 섰다. 정부가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이라는 고강도 구조조정 방침을 내놓으면서 그간 표류하던 업계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정유사와 석유화학사가 손잡는 ‘수직 통합’이냐, 석화사끼리 묶는 ‘수평 통합’이냐를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오가고 있지만, 공통의 목표는 한정된 원료와 생산능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경쟁력을 되찾는 데 있다.
롯데케미칼(011170)-현대케미칼,
LG화학(051910)-GS칼텍스, 롯데케미칼-여천NCC 등 굵직한 빅딜이 거론되는 가운데 이번 구조조정은 단순한 설비 감축을 넘어 업계 생존 전략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사진=롯데케미칼)
정부, 연말까지 NCC설비 최대 25%까지 감축 목표 제시
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 방향’을 통해 국내 NCC 설비를 최대 25%(연간 370만톤)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내 전체 생산능력이 약 1500만톤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4분의 1 이상을 줄여야 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10여 개 NCC 공장이 통폐합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정유사와 석유화학사가 손잡는 수직 통합, 다른 하나는 석화사끼리 힘을 합치는 수평 통합이다.
수직 통합 모델은 석유화학사가 보유한 NCC 설비를 정유사에 넘기고 석화사는 다운스트림, 즉 합성수지·첨단소재 등 2차 제품 생산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원유 정제를 통해 나프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정유사와, 원료 확보 부담을 덜 수 있는 석화사가 서로 윈윈(win-win)하는 구조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실제 충남 대산산업단지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각각 지분을 나눠 가진 합작사 현대케미칼을 두고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보유한 노후 NCC 설비를 멈추고 현대케미칼 NCC와 통합해 운영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전한다. 이 경우 HD현대오일뱅크는 정유 부문에서의 원료 조달 역량을 활용하고, 롯데케미칼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수산업단지에서도 수직 통합 논의가 진행 중이다. LG화학이 GS칼텍스에 수직 계열화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LG화학은 에틸렌 연산 338만톤으로 국내 최대 NCC 사업자다. GS칼텍스 역시 2022년 준공한 NCC에서 연간 90만톤을 생산하고 있어, 두 회사가 손을 잡을 경우 원료 공급과 수요처 확보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LG화학은 안정적 나프타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고, GS칼텍스는 대형 고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인접한 입지 특성상 물류 효율 개선 효과도 기대된다.
정유사 "NCC 통합, 우려 지점 많아"
하지만 정유사 입장에서는 NCC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 부담이다. 정유사들은 올해 상반기 부진한 실적 탓에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화학업계를 돕기 위해 무리한 구조조정에 나섰다가 오히려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정유사 입장에서 NCC는 원재료 공급망 관리 이상의 위험을 떠안는 셈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기업별 이해관계와 사업 구조가 달라 빠른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수직 통합에 걸림돌이 남아 있는 가운데,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석유화학사끼리의 수평 통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케미칼과 여천NCC 논의다. 롯데케미칼은 여수에서 연산 123만톤, 여천NCC는 229만톤 규모의 NCC를 운영 중이다. 두 회사가 손을 잡을 경우 350만톤이 넘는 초대형 NCC 단지가 탄생한다. 업계에서는 단순히 설비를 통합하는 것만으로도 최소 5% 이상의 효율 개선이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석유화학사 간 수평 통합을 추진할 경우 설비를 운영하는 데 있어 5%가량의 효율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라며 "이는 연간 수백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여천NCC의 지분 구조가 빠른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각각 50%를 보유한 합작사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양측이 여천NCC 회생 방안을 두고 갈등을 드러낸 바 있어, 롯데케미칼과의 협상 역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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