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KT(030200) 품을 떠난
이니텍(053350) 매각 과정에 무자본 인수합병(M&A)이 자행되면서 결과적으로 헐값 매각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자본 M&A 펀드, 이니텍 주식을 담보로 인수 대금을 마련하는 등 매수 희망자 측에서 우회 자금 조달을 감행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이니텍이 보유한 현금성자산보다도 낮은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됐습니다. 경영 효율화 일환으로 이니텍 매각이 진행됐다는 KT 측 설명과 달리 김영섭 KT 대표와 윤석열정부에서 꾸려진 거수기 이사회가 만들어낸 무책임 경영의 대표적 사례라는 쓴소리가 나옵니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다트에 따르면 이니텍의 최대주주인 에스제이제일차홀딩스는
오션인더블유(052300)와 초이콥으로부터 차입금을 마련해 이니텍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에스제이제일차홀딩스 측은 오션인더블유로부터 417억원을, 초이콥으로부터는 25억원 규모를 빌렸습니다. 전 최대주주였던
엔켐(348370)과 엔켐의 특별관계자 중앙첨단소재로부터 640억원 규모로 이니텍 지분 40.04%를 매입했는데, 사실상 매입액의 65% 이상이 차입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에스제이제일차홀딩스 매입액의 상당액을 차입해준 오션인더블유는 아름드리코퍼레이션이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입니다. 아름드리코퍼레이션의 최대주주는 원영식 전 초록뱀미디어 회장이고, 지분은 그의 아들인 원성준씨가 100%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니텍 지분이 에스제이제일차홀딩스로 넘어오기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KT는 최초 매수자로 나섰던 로이투자파트너스·사이몬제이앤컴퍼니 컨소시엄에 841억원 규모로 이니텍을 매각하기로 했지만, 이들의 자금 조달 문제로 계약이 무산됐습니다. 이후 이니텍은 로이투자파트너스·사이먼제이앤컴퍼니 컨소시엄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에이아이솔루션홀딩스에 양도됐는데요. 에이아이솔루션홀딩스는 이니텍 인수 대금 841억원 중 172억원을 출자받고 669억원을 차입했습니다. 엔켐이 이 SPC에 지분 50%를 출자했고, 중앙첨단소재 등과 함께 자금을 차입해줬습니다. 엔켐 측은 에이아이솔루션홀딩스에 자금을 빌려주면서 이니텍의 구주 37.25%에 대한 담보권을 설정했는데, 출자금과 대여금을 이니텍 주식으로 상계해 배분받고 이니텍 최대주주에 올랐습니다. 엔켐 측은 이후 이니텍 신주도 인수했습니다.
현재 이니텍의 최대주주인 에스제이제일차홀딩스와 에스제이제일차홀딩스는 올해 4~5월 신설된 법인인데 모두 사이몬제이앤컴퍼니 소속입니다. 결국 당초 원 매각자였던 사이몬제이앤컴퍼니에 이니텍이 돌아간 셈입니다.
자금 조달 문제로 계약이 무산됐던 사이몬제이앤컴퍼니 측에 이니텍이 안기기까지 모두 차입 매수 방식으로 지분인수가 진행됐습니다. 에이아이솔루션홀딩스는 172억원만 자기자본으로 넣고 나머지는 차입금을 활용했습니다. 에스제이제일차홀딩스 측도 인수 대금 상당부분을 차입금 형태로 마련했는데, 이니텍 주식 담보로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차입이나 피인수 기업 주식을 담보로 경영권을 획득하려는 대표적 사례"라고 진단하면서 "투기적 재매각이 반복될 경우 자산 유출, 배임으로 시장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사옥의 모습. (사진=뉴시스)
무자본 인수는 결과적으로 이니텍 헐값 매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니텍은 유동화가 가능한 현금성 자산 비중이 높은 KT 계열사였습니다. 1분기 말 기준 이니텍 자산 1167억원 가운데 단기금융상품과 현금성자산이 994억원입니다. 자산의 85%를 자유롭게 융통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회사의 부채는 50억원에 불과합니다. 최종 매수자인 에스제이제일차홀딩스를 거느리고 있는 사이몬제이앤컴퍼니 입장에서 보면 인수 자금 대부분을 차입으로 조달했음에도, 회사 내 현금성 자산 1000억원에 대한 지배력을 가질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이니텍 경영진과 노조가 매각 절차에 대해 강력히 반대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헐값 매각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김영섭 대표와 그 체제하에서 꾸려진 이사회가 형식적인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KT 안팎의 평가입니다. KT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오너가 없는 기업에 CEO가 개인 치적을 위해 움직였고, 이사회는 이니텍 매각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렇게 무책임한 경영이 계속된다면 KT의 기업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