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삼성전자가 이달 중 세계 최초로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양산 출하하며, 메모리 시장 주도권 탈환을 위한 기선제압에 나섰습니다. 전작인 HBM3E에서 엔비디아 퀄 테스트 지연과 기술적 결함 논란을 겪었던 삼성전자가 절치부심 끝에 반전에 성공했다는 평가입니다. 다만 전체 점유율 측면에서는 여전히 SK하이닉스가 우위일 것으로 점쳐집니다. 마이크론이 경쟁에서 사실상 밀려난 가운데, HBM4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양자 구도로 재편되는 양상입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서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실물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이달 넷째 주부터 엔비디아에 공급할 HBM4를 출하할 예정입니다. 당초 월말로 알려졌던 일정이 소폭 앞당겨진 것으로, 구체적 출하 시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출하 일정이 가시화되면서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HBM4 출하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확보할 것으로 보입니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의 이른바 ‘메모리 3자 구도’에서 한발 앞선 셈입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지난해 9월부터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HBM4 양산에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상당 부분 격차를 좁힌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는 지난해 엔비디아 퀄 테스트 지연 등으로 기술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라고 평가받던 삼성전자가 승부수를 띄운 결과입니다. 삼성전자는 HBM4 개발 과정에서10㎚급 6세대(1c) D램을 적용하는 등 설계와 공정을 전면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이를 통해 성능을 끌어올렸고, 이러한 기술적 진전이 고객사 협상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를 빠르게 추격하면서, 엔비디아 공급망 내 HBM4 경쟁은 사실상 양자 구도로 전개되는 추세입니다. 지난 7일(현지시각) 반도체 분석 업체 세미애널리시스는 엔비디아 베라 루빈 공급망에서 마이크론의 HBM4 점유율을 0%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마이크론이 엔비디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서 마련된 SK하이닉스 부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실물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최초 공급자’ 타이틀과 달리, 공급 물량의 총량에서는 SK하이닉스가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공급 물량 점유율은 70% 대 30%로 SK하이닉스가 우세합니다. 이는 이전 세대 제품부터 이어진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과, 조기 생산라인 구축 효과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됩니다.
삼성전자가 먼저 출하에 나서며 HBM4 경쟁에 불을 붙인 가운데, SK하이닉스는 기존 우위 구도를 지키겠다는 전략입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컨퍼런스콜에서 “우리는 HBM2E부터 고객사 및 인프라 파트너사와 원팀으로 협력했다. HBM 시장을 개척한 선두주자”라며 “기술이 앞서는 수준을 넘어, 그동안 쌓아온 양산 경험과 품질에 대한 고객 신뢰는 단기간 추월할 수 없는 영역이다. HBM4도 고객사들의 우리 제품에 대한 선호도와 기대 수준은 굉장히 높다”고 자신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선출하’ 자체가 의미 있는 성과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빅테크 기업도 선두 기업의 HBM에 맞춰 AI 칩을 만들 테고, 그럼 후발주자들은 선두기업의 형태에 맞춰 HBM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먼저 공급망에 들어가는 기업이 일종의 표준이 될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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