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왼쪽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망루에 함께 선 모습은 강렬했다. 1959년 10월1일, 중국 인민공화국 창건 10주년 경축대회에 당시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김일성 북한 주석이 톈안먼에 함께 오른 지 66년 만이다.
처칠 영국 수상의 표현대로 '철의 장막' 같던 냉전(cold war) 체제가 종식된 이후 처음으로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일대 사건이었다.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세 나라 모두 핵을 가졌고, 미국과 '격하게' 갈등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수의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은 "천안문의 反서방 전선, 新냉전 선포식" "新냉전 가속" 등으로 보도·논평했다. "신냉전의 서막", "신냉전 시대 신호탄?"이라며 곧 신냉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예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북·중·러가 미국과 갈등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과연 현재 국제 정세가 냉전기에 빗대 '신냉전'이라 표현할 만한 상황일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냉전, 서로 다른 경제체제 이념 대결…사회주의 몰락으로 종식
냉전은 우선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이념 대결이었다. 총은 안 들었지만, 사활을 건 존재론적 투쟁이었다. 그래서 냉전은 결국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하고서야 끝났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이념 투쟁이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지만 과거 소련처럼 이념 지향성이 강한 것도 아니고, 외부로 이를 전파하려 하지도 않는다. 미국 일각에서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을 묶어 '민주주의 대 전체·권위주의 전선'이라고 이념화를 시도하지만 이는 지정학적 갈등 양상이 훨씬 크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냉전이 끝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건재하지만, 이에 맞서던 바르샤바조약기구'(WTO)는 벌써 사라졌고 이를 대체하는 기구도 없다.
'반미 전선'이라고 해도 그 결속도가 강하지 않고, 그 '반미 전선' 내부 상황도 복잡미묘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전승절 직전에 같은 중국의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O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푸틴과 포옹했다. 그러나 중국군이 대규모 열병 행사를 하는 톈안먼에는 가지 않았다. 관세로 몰아치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화가 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여전히 국경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중국군 행사에 참석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초청으로 열병식에 참석한 26개국이 모두 친중 일변도 나라들도 아니다. 또 '신냉전'이 아니라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는 시대 규정이 나오는 이유다.
또 과거 미국과 소련은 사실상 교역이 거의 없는 별도의 경제 체제였다. 경제적으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블록에서 산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중국은 하나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 존재하는 데다,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얽혀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의존 상황을 두고 일론 머스크는 "샴쌍둥이"이라 부르고,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으로 유명한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핵의) 상호확증파괴와 유사한 경제적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economic destruction) 상황"이라고 말한다.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열심히 공급망 조정을 한다고 했어도 여전히 중국은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이어 미국의 3대 교역국이다. 트럼프가 올해 2기 취임 후 관세를 무기로 몰아치자 중국은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이지스 구축함 등 첨단 전략 장비에 필수품인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맞섰고,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관세 휴전'을 두 번이나 연장해야 했다. 지난 30년 세계화 과정에서 양국 경제가 너무 얽혀 있어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완전한 분리)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위험 분산)과 다각화(diversification)'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미·일 남방 삼각 대 북·중·러 북방 삼각'이라는 표현은 가능하겠으나, 수평적으로 단순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은 1994년 처음 시작해 2023년 8월18일 캠프 데이비드 회담까지 13번 열렸다. 특히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이전 12번 회담이 국제행사 등 다자회의 계기에 열린 것과 달리 첫 단독 3국 정상회담이었다. 이를 통해 군사훈련 정례화 등 3국의 군사 분야 협력이 실질적 단계로 들어가게 됐다. 한·미·일 3국은 최소한 2008년부터 이미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해왔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80주년 중국 전승절 열병식 및 환영 리셉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제 정세 '신냉전'이면 한국의 선택은 하나뿐
북·중·러 3국 관계는 직접적인 3자 관계가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중·북 관계, 중·러 관계라는 양자적 성격이 강하다. 북한과 러시아는 사단급 이상 병력을 파병할 정도의 군사동맹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연합 해상훈련을 하지만, 3국 전체를 묶는 정치·군사적 틀도 없고, 3국 연합 군사훈련을 한 적도 없다. 3일 중국 전승절에서도 3국은 한 자리에서 회동하면서도 이를 제도화하는 3극 정상회담은 하지 않았다. 중국이 미국과 서방의 격한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위성락 안보실장은 이를 "3국성(3국 이미지)이 부각되긴 했으나 3자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북·중·러 정상의 집결은 강력한 상징성을 뿜어내지만 구조적 현실은 복잡하다.
'신냉전'이라는 갈등 일변도 프레임으로 국제 정세를 인식하면, 과거 냉전 때처럼 우리의 선택지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를 배척해야만 할까. 트럼프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국제 정세에 밝은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전승절 행사에 이재명 대통령의 참석을 굉장히 원했다. 시진핑의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시진핑 참석 문제와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푸틴은 전승절에서 만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북·러 정상회담 기회에 김정은 위원장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면 좋겠느냐"고 묻는 등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의 비판에 대해서도 "비우호적 국가 중 가장 우호적"이라고 했다. 여전히 중국, 러시아와 외교 공간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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