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고 하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켰다가 중상해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최말자씨 사건의 재심 첫 공판이 23일 열립니다. 재심이 시작되고 2차례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선 증인채택 및 입증계획 등에 관한 공방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씨 측 변호인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유사한 사건의 검찰 불기소 처분 및 무죄 선고 판결이 담겨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전국의 여성·시민사회단체는 2020년 5월6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후 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번 재심은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가해자로 몰려 유죄를 선고받은 70대 여성이 56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며 청구한 것이다. (사진=뉴시스)
최씨에 대한 재심은 2024년 12월 대법원이 재심청구 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받아들여 이뤄지게 됐습니다. 최씨는 2020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최씨 측이 제시한 증거들이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지 않고, 법률의 해석이나 적용의 오류 등은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검사의 불리한 진술 강요나 법관의 성차별적 재판 진행 등을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재심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최씨가 재판받을 당시 법원의 성차별적 인식이나 가치관이 현재와 같았다면 최씨를 가해자로 낙인찍지 않았을 것이라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씨가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부산고법이 최씨의 진술을 깨뜨릴 만한 반대 증거나 사정이 존재하는지 사실 조사를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후 부산고법이 재심 기각 결정에 대한 항고를 인용하면서 재심이 시작된 겁니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제2항은 방위 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해 과잉 방위라도 형의 감경이나 면제를 하도록 하고, 제3항은 과잉 방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합니다. 법이 보호하는 모든 이익은 정당방위로 보호될 수 있고 타인을 위한 정당방위도 가능합니다. 법익에 대한 침해는 현재의 침해인 경우에 인정되는데, 법익에 대한 침해가 급박한 상태에 있거나 바로 발생했거나 아직 계속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이러한 침해는 법질서 전체에 반하는 일반적인 위법행위를 말합니다.
부당한 침해에 대한 방위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방위 의사가 필요합니다. 정당방위 행위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인식과 어떠한 방위 행위를 한다고 인식해야 하는 겁니다. 방위 행위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방위에 적합한 수단이어야 하고 방위 수단이 여러 가지라면 상대적으로 최소의 피해를 주는 방위 행위를 선택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정당방위의 성립을 엄격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12살부터 자신을 강간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 계속적 범행에 대한 침해의 현재성을 인정하는 듯 판시했지만,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행위는 정당방위나 과잉 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식칼을 들고 본인을 위협하자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 관해서도 현재의 부당한 침해는 인정했지만, 자신과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상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나 과잉 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장기간 동일인으로부터 지속적인 피해를 당하면 합리적으로 생각해 대응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갑작스럽게 부당한 위법행위를 당하는 경우 가해자에게 가장 최소한의 피해를 입힐 수단을 선택해 방위 행위를 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방위를 위한 행위를 좀 더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개인주의적 경향이 심화되는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면 범죄에 홀로 대항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형사사건의 처리 과정과 형 집행 과정에서 범죄자의 인권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 형벌권은 강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남용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국가의 형벌권 행사에 있어서는 범죄자 인권 보호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인 간의 관계인 범죄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방위하기 위한 피해자의 행위에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정당방위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거나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정당방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해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절단한 최씨의 사례와 유사한 사례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돼 불기소되거나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많습니다. 하지만 법원이나 수사기관의 해석은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적용될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자의 방어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합니다. 어떤 종류의 범죄라도 피해 당사자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성범죄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의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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