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수술 아버지 찾아가 전재산 증여계약…법원 '반사회질서 법률행위'
2025-07-14 13:22:19 2025-07-14 14:12:52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수원지법에서는 심장 수술 후 퇴원한 아버지를 압박해 증여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므로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이 사건의 원고들은 피고의 자녀들로서 피고와 사이에 피고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판 돈을 원고들에게 증여하기로 하는 증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다른 재산이 발견되면 전 재산을 원고들에게 증여하기로 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원고들은 이 증여계약을 이유로 피고에게 29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증여계약의 체결 경위가 이례적이었습니다. 피고가 심장 수술을 받고 퇴원한 날 원고들이 피고의 집으로 찾아갔고, 안정과 휴식이 필요한 피고를 장시간 압박하면서 피고의 재산 내역과 차명재산 등을 조사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위와 같은 내용의 증여계약을 체결한 겁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증여계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계약이 체결된 경위를 보면 원고들의 계속된 요구에 따라 심리적, 체력적으로 지친 피고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피고가 퇴원 직후 원고들에게 급하게 재산을 증여할 이유가 없었던 점, 원고들이 주도적으로 증여계약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했고 증여계약서 작성 후 피고를 대리해 사서증서 인증까지 받은 점, 피고가 큰 수술을 받고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상황에서 퇴원 다음 날 새벽 1시경 증여계약서에 날인한 후에야 위 상황이 종료된 점 등을 볼 때 원고들이 피고의 건강 상태가 취약한 시점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이 사건 증여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계약 체결 당시 원고들은 고문 등을 불러 피고의 재산 내역을 조회하고 피고와의 절연 의사를 밝히는 등 증여계약 체결 과정에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벗어난 비정상적인 행동이 피고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원고들이 피고와 이 사건 증여계약을 한 동기도 피고의 재산을 빼앗는 것으로 봤습니다. 이 사건 증여계약으로 인해 피고의 재산권을 박탈하고 생존을 어렵게 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등의 사정을 보면 이 사건 증여계약은 그 내용 자체도 사회상규에 반한다는 겁니다. 
 
증여계약이란 당사자 일방(증여자)이 별도의 대가를 받지 않고 상대방(수증자)에게 자신의 재산을 수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입니다. 계약이므로 증여자와 수증자의 의사가 합치해야 하는데 묵시적으로도 가능합니다.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았거나 수증자가 증여자 등에 대해 범죄행위를 한 때, 증여자에 대해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때 등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이미 이행한 부분은 해제할 수 없게 됩니다.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합니다. 대법원은 민법 103조에 의해 무효로 되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 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는 반사회질서적인 것이 아니라도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법률행위에 반사회질서적인 조건 또는 금전적인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반사회질서적 성질을 띠게 되는 경우 및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를 포함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반사회질서행위는 모습이 다양합니다. 그 위반의 모습에 따라 △정의 관념에 반하는 행위 △인륜에 반하는 행위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행위 △생존의 기초가 되는 재산의 처분 등 생존권의 위협 행위 △지나친 사행행위 등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반사회질서적인 법률행위는 소급적·절대적으로 무효가 됩니다. 따라서 위 사건의 증여계약은 원래 없었던 것이 되는 겁니다. 
 
위 사건에서 원고들은 증여계약 중 일부만이 무효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민법 제137조는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하지만 그 무효 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했을 것이라고 인정되면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당사자가 무효 부분 이외에 나머지 부분만으로도 법률행위를 했을 것이라는 가정적 의사가 인정되는지 나머지 부분의 유효를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위 사건에서 아파트 매도대금을 증여할 의무를 규정한 부분과 전재산을 증여할 의무를 규정한 부분이 상호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고 판단해 증여계약 전부가 무효라고 봤습니다. 
 
민법은 사적자치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률행위가 사회의 질서를 위반하면 그 효력을 부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사유를 모두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제103조와 같이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을 통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법률행위를 무효로 하도록 한 겁니다. 법질서가 불법에 조력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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