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대출 사기 피해에…대법 "대리행위로 인한 책임 인정 안 돼"
2025-07-07 13:40:54 2025-07-07 13:58:59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대출 모집인이 피고의 명의를 도용해 사기 행위로 대출 계약을 체결한 사건과 관련해 '피고에겐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번 사안에선 피고가 표현대리(일정한 요건을 갖춘 무권대리 행위는 정당한 대리행위과 같이 취급하는 제도) 책임을 부담하는지 쟁점이 됐는데, 대법원이 피고의 책임을 부정한 겁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원고는 대출업 등을 하는 여신 전문 금융회사로 A회사와 대출 모집 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피고는 2019년 8월쯤 임대주택을 보증금 2억2000만원에 임차하면서 A회사에게 B보험으로부터 임대차 보증금 담보대출을 받는데 필요한 서류 작성을 위임했습니다. 피고는 대출을 위해 인감증명서, 주민등록초본 및 등본, 예금통장과 피고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등을 A회사의 운영자와 직원 C 등에게 교부했습니다. C 등은 피고의 위임에 따라 B보험으로부터 임대차 보증금 대출을 받았고 임대인에게 보증금으로 지급됐습니다. 
 
일주일 후 C 등은 피고 명의의 대출 신청서와 계약서 등을 위조하고, 교부받았던 피고의 인감증명서 등과 함께 원고에게 제출해 대출금을 편취했습니다. 이후 원고는 피고가 대출금을 갚을 의무가 있다며 대출금과 이자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 관해 표현대리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C 등이 대출 계약에 필요한 일체의 서류를 갖추고 있었던 점 △원고는 A회사와 대출 모집 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했고 그에 따라 통상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대출 거래였던 점 △C 등이 피고 명의 휴대전화를 소지해 허위로 대출 의사를 확인하는 것까지 예상하기는 어려운 점 △원고가 대출자 본인을 직접 만나지 않고 대출 의사를 확인할 주의 의무까지는 없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춰보면 원고가 C 등에게 피고를 대리해 대출 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원고는 C 등을 통해 접수한 대출 신청서 등을 피고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인식하고 대출을 실행했고, 그로부터 9개월 정도가 지난 후에야 C 등이 해당 서류를 위조한 사실을 인식했다고 봤습니다. 위조한 서류를 기초로 이뤄진 대출 계약에는 대리행위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원고가 대출 계약이 피고 본인의 의사에 이뤄진 것이라고 믿었더라도, 금융기관인 원고가 본인 확인 의무와 대출 모집 법인 사용 시 준수해야 할 주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원고가 그와 같이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2심의 결론을 수긍하면서도 이 사안에는 표현대리 법리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출 계약을 체결할 당시 C 등에게 피고를 대리할 기본대리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C 등이 피고 자신으로서 본인의 권한을 행사해 이 사건 대출을 신청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금융회사인 원고가 스스로 해야 할 대출 업무 중 핵심적인 부분인 대출 신청서 및 대출 계약서 등의 신청인 자필서명 확인, 대출 구비 서류의 확인, 임대차 조사 등의 업무를 대출 모집 업무 위탁계약을 통해 A회사에 위탁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원고가 이를 통해 대출상품의 판매 촉진, 분업의 이익을 누리면서 대출 신청서 등의 위조 여부를 직접 조사하고 확인할 기회를 스스로 제약하는 거래 구조를 선택했으므로 그로 인한 불이익이나 위험도 원칙적으로 원고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겁니다. 
 
원고와 같은 금융회사는 불법·부당 대출 모집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출 모집인에 대한 사전 교육 및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하고, 대출 실행 이전에 고객에 대해 고객 본인 확인 및 대출 계약의 중요 사항에 관한 확인을 해야 할 의무 등을 부담하며, 대리권의 확인에 관해 일반인보다 고도의 주의 의무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피고 명의 휴대전화로 전화해 대출 신청 의사를 확인한 것만으로 과실이 부정되지 않고, 임대인을 상대로 임대차 보증금 반환채권에 관한 선순위 담보 설정 여부 등을 확인했다면 이 사건 대출의 실행을 막을 수 있었던 점까지 고려하면 피고에게 표현대리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겁니다. 
 
민법 제126조는 대리인이 그 권한 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3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규정합니다. 본인으로부터 대리권을 받았다고 해도 그 범위를 넘은 대리행위는 무권대리가 되는데, 상대방이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유권대리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책임을 인정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하고 거래의 안전을 위해 일정한 요건 하에 대리의 효과를 인정하는 규정입니다. 
 
이 사안에서는 대출 모집인의 행위가 문제됐는데, 대출 모집인은 대출성 상품의 판매 대리를 하거나 중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금융회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금융상품 신청 상담, 신청서 접수 및 전달 등 금융회사가 위탁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대출 모집인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록해야 하고 금융감독원 등에서 그 정보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대출 모집인은 금융회사로부터만 수수료를 받고 고객으로부터는 수수료를 받지 않습니다. 
 
대출 모집인에게 업무를 맡겼더라도 결국 모든 법률 효과는 본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생각해 대출 절차나 서류 등을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기관은 대출 업무에 관한 고도의 주의 의무가 있으므로 대출 모집인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이뤄지도록 해 금융기관이나 고객이 피해를 입는 일을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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