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술에 취해 현관에 쓰러져 있는 남편을 별다른 조치 없이 두고 외출한 사이 남편이 사망하자 유기죄로 기소된 아내 A씨에게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반면 다른 사건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보름 넘게 방치해 시체유기죄로 기소된 아들 B씨는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사진=뉴시스)
A씨는 2023년 5월 자택에 귀가했다가 현관에 쓰러진 남편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술에 취해 바지에 용변이 묻어 있을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씨는 별다른 조치 없이 남편의 사진만 몇 장 찍고 외출했다가 딸과 식사를 하고 돌아왔는데 남편이 여전히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지만 결국 숨진 겁니다. 검찰은 A씨가 남편을 법률상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지 않은 점을 들어 유기죄로 기소했습니다.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는데, 변호인은 남편의 죽음을 예상할 수 없었고 위급한 상황을 인지하고도 고의로 유기할 만한 동기가 없었다고 변론했습니다. 가족들은 남편이 평소 술을 많이 마시고 아무 곳에서나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평소 피해자에게 화가 나 있던 부분까지 가감 없이 진술하고, 이들의 관계와 피해자의 평소 음주 습벽, 당시 현장 사진 등을 봤을 때 유기의 고의가 없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형법 제271조 제1항은 나이가 많거나 어림, 질병 그 밖의 사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유기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합니다. 유기죄는 부조를 요하는 요부조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법률상 보호 의무에는 민법에 근거한 부부 사이의 부양 의무가 포함되고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혼인 생활의 실체가 존재한다면 보호 의무가 긍정됩니다.
대법원은 계약상 보호 의무가 주된 급부 의무가 부조를 제공하는 것인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계약의 해석상 계약 관계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상대방의 신체 또는 생명에 대해 주의와 배려를 한다는 부수적 의무의 한 내용으로 상대방을 부조해야 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유기죄가 성립하려면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 내용은 요부조자에 대한 부조 의무가 존재한다는 점과 자신의 행위로 요부조자의 생명, 신체에 위험이 발생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을 말합니다. 위 사건과 같은 경우 A씨가 남편이 부조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하고도 방치했어야 유기죄가 성립합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A씨가 남편이 부조를 요하는 상태임을 미필적으로라도 알지 못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반면 B씨는 지난 2024년 말 부친이 집에서 숨진 사실을 알았음에도 보름 이상 부친의 시신을 방치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B씨는 재판에서 아버지가 사망한 사실을 모르다가 경찰관이 집에 왔을 때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됐다며 고의로 시신을 방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경찰관이 출동하기 하루 전 친했던 이웃이 집을 방문했을 때 악취가 났고, 해당 이웃에겐 다음에 오라며 돌려보냈던 점 등을 바탕으로 B씨의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형법 제161조 제1항은 시체, 유골, 유발 또는 관 속에 넣어 둔 물건을 손괴, 유기, 은닉, 또는 영득한 자를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합니다. 시체유기죄는 요부조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유기죄와는 달리 신앙에 관한 죄로서 사자에 대한 사회적 풍속으로서의 종교적 감정 등을 보호법익으로 합니다. 하지만 시체유기죄는 법률, 계약 또는 조리상 시체를 장제 또는 감호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장제나 감호의 의사 없이 이를 방치하는 행위나 그 의무 없는 자가 장소적 이전을 하면서 종교적·사회적 풍습에 따른 의례에 의하지 않고 이를 방치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때문에 유기죄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시체를 수습할 의무가 있는 사람은 시체를 단순히 현장에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시체유기죄가 인정됩니다. 대법원은 시체를 수습할 의무가 인정되는 범위를 유기죄보다 넓게 봅니다. 최근 사실혼 배우자인 피해자를 베란다에서 살해한 뒤 한 달간 방치한 피고인에게 조리상 시체에 대한 장제 또는 감호 의무를 인정해 시체유기죄를 유죄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본 사건에서 재판부는 B씨가 사망한 사람의 아들로서 시체를 수습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 해당하고, 집 안에서 나는 악취나 친한 이웃을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점 등을 볼 때 아버지의 시체를 유기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한 겁니다.
형법상 유기죄의 유기는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 의무가 존재하는 사람만이 주체가 되고, 시체유기죄의 유기는 더 넓게 조리상 시체를 수습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시체를 방치하는 경우에도 성립합니다. 평소 본인과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보호 의무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서로를 위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상대방의 상태를 살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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