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엄중 조치를 지시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관계 부처 회의를 열고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있는 법 개정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경찰도 엄정 대응에 나서 고압가스 안전관리법(고압가스법), 항공안전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할 방침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부터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해 온 경기도청도 이번 관계 부처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경기도는 접경지역 도민의 안전을 위해 위험지역에서의 대북 전단 살포를 끝까지 막아낼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대남방송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 등 각종 피해를 입은 접경지역 주민들 역시 대북 전단 살포를 반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납북자가족모임은 납북자 가족의 생사 확인 등을 요구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북 전단을 계속 살포할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황명선,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등 의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북전단 살포금지 관련법 개정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은 남북관계의 발전에 따라 대북정책의 법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2005년 12월29일 제정됐습니다. 2020년 12월29일에는 대북 전단 등의 살포 관련 용어를 정의하고 남북합의서 위반행위를 규정해 처벌하는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남북합의서 위반행위로서 전단 등을 살포해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제24조 제1항 제3호와 그 처벌 규정은 헌법재판소(헌재)가 2023년 위헌으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9인의 재판관 중 7명의 위헌의견으로 위헌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헌재는 모든 국민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과 정치사상을 외부에 표현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지며, 이는 자유민주적 헌법의 근본 가치이자 민주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므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 중 그 내용을 제한하는 것은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허용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위 조항의 목적은 표현의 내용 중에서도 북한 정권이 용인하지 않는 표현을 규제하는 것이므로 중대한 공익의 실현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허용되고 과잉금지원칙 준수 여부를 심사할 때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겁니다.
헌재는 위 조항의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도 적합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근거한 조치로도 충분히 현장을 파악하거나 통제할 수 있고, 대북 전단의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거나 처벌하지 않고도 집회·시위의 신고와 유사한 방식을 통해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나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나 다른 법령에 저촉될 여지가 있는 경우 살포를 제지하고 해산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선택하면 덜 침익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중대한 법익에 대한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 한해 최후 수단으로 선택되고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하는데 위 조항은 과도한 처벌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겁니다.
헌재는 법익의 균형성 측면에서 표현의 자유를 사전에 제한하려면 그 제한으로 인해 달성하려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의 도발과 대북 전단 등의 살포 사이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는 어려우므로 대북 전단의 살포를 금지하고 처벌한다고 해서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이 확보되거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국가의 책무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인지 단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위 조항으로 인해 초래되는 표현의 자유의 제한은 매우 중대하다고 봤습니다. 대북 전단이 외부와 단절된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발전상을 알리고 북한 정권의 모순을 비판하는 등 의견을 표명하는 수단으로서 전달되는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므로 제한되는 사익이 더 크다고 본 겁니다.
대법원은 같은 해 대북 전단을 살포한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취소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대북 전단 살포 행위가 북한 주민에게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고 우리 사회 내의 중요한 공적 쟁점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등 나름의 공적·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점 △헌법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점 △대북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생명·신체의 위험이나 남북의 긴장 관계를 조성한다는 것은 북한이 그 내용을 문제 삼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인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헌재와 대법원이 모두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국가가 형사처벌을 하거나 단체의 설립을 취소하는 행정처분 등을 하는 행위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겁니다. 따라서 이를 우회적으로 처벌하려는 시도는 자칫 사법부의 결정에 반하는 행정권의 행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재가 결정에서 든 예시와 같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해 대북 전단 살포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현장에서 저지하는 정도의 공권력 행사는 현행법상으로도 가능해 보입니다.
우회적인 대응에는 한계가 있고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대북 전단 살포에 관한 남북관계발전법의 정비가 필요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해 헌재의 결정에 부합하는 한도에서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합리적으로 규제할 방안을 마련해 기본권의 충돌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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