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급발진 인정 ‘제로’…“운전자 입증 탓” vs “차량 결함 없어”
급발진 의심 매년 증가…지난해 133건
일반인 제어시스템 입증 사실상 ‘불가’
완성차, 차량 결함 과학적 증명 어려워
현실적 대안은…“후방 블랙박스 페달로”
2025-06-19 16:09:18 2025-06-19 16:09:26
[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1 지난 16일, 전남 함평군의 한 상가 밀집 지역에서 승용차가 상점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운전자를 포함해 2명이 다치며 인근 상가에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직후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했습니다.
 
#2 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 80대 여성이 몰던 차량이 돌진해 시민 4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이 여성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7일 오후 4시 50분쯤 전남 함평에서 승용차가 상가로 돌진해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했다.(사진=함평소방 제공)
 
작년 120건 모두 가속 페달 오조작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가 매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 45건에 불과하던 급발진 감정 의뢰 건수는 2021년에는 51건으로 늘어나더니 2022년 67건, 2023년 105건, 2024년 133건으로 20~30%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도합 5년간 총 401건에 달하는 급발진 의심 사례가 국과수에 접수된 것입니다.
 
급발진은 차량이 운전자 의도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가속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기계적 또는 전자적 결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함이 발견돼 급발진으로 공식 인정받은 사례는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특히 지난해 133건의 급발진 감정 의뢰 건수 중에서 사고로 인해 차량이 대파돼 감정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한 120건은 모두 ‘가속 페달 오조작’으로 결론났습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운전상의 실수가 사고원인이라는 얘기입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 신고된 급발진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5년간 111건의 급발진 관련 신고가 접수됐지만, 기술분석과 현장조사 등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교통안전공단은 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차량에 대한 면밀한 기술 검토를 진행합니다. 엔진제어장치(ECU) 데이터 분석과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의 작동 상태 확인, 전자 제어 시스템의 이상 여부 점검 등 다각도로 검증합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식당 앞에서 80대 여성이 몰던 검은색 승용차가 식당 방향으로 돌진한 사고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수습에 나서고 있다. (사진=강남소방서 제공)
 
“소프트웨어 충돌로 발생할 수도
 
반면, 급발진을 주장하는 이들은 급발진 인정이 안 되는 이유로 입증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현행 법률상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임을 입증하는 책임은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이 차량의 복잡한 전자제어 시스템의 결함을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차량에 소프트웨어가 많이 들어가는데, 이들끼리 충돌이 발생해 사고가 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라고 했습니다.
  
사고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이 필수적입니다. EDR은 완성차 제조사가 차량 엔진컨트롤모듈(ECM)에 연결하는 장치로, 충돌 전후 속도 변화나 브레이크 작동 여부 등을 기록해 사고 발생 정황 파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지난 2012년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통해 차량 제조사의 EDR 기록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법적 장치에도 법원은 급발진을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업계도 현재까지 과학적 검증을 통해 차량 결함이 확인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합니다. 그동안 소비자를 의식해 온 완성차 업체들은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직접적인 의견을 밝히지않았지만, 과학적으로 급발진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급발진’이라는 현상은 제조사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라며 “급발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도 꺼려 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완성차 업계에서는 급발진 사고는 따지고 보면 운전 미숙이나 오조작으로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컨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착각해 교통사고가 벌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1937년 미국에서 첫 자동변속기 차가 나온 이후 세계적으로 80여 년 넘도록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사고가 벌어졌지만, 급발진으로 판명이 난 적은 없었습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급발진은 단순 현상이지, 실제로 그것의 실체가 명확히 증명된 경우는 없다”고 했습니다.
 
급발진을 주장한 사고에서 페달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찍힌 가속페달 밟은 상황. (사진=뉴시스)
 
“후면 블랙박스를 페달로 옮겨야”
 
이처럼 원인을 두고 양쪽 입장이 팽팽한 맞서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히는 것은 ‘페달 블랙박스’ 설치입니다. 운전자의 페달 조작 상황을 실시간으로 기록해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윤 의원은 페달 블랙박스 설치 시 자동차보험료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윤 의원은 “페달 블랙박스가 장착된 차량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통해 자발적 설치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별도의 페달 블랙박스 설치에 비용이 드는 만큼, 기존 블랙박스를 활용한 방안이 현실적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후면 블랙박스의 카메라 채널 중 하나를 페달 아래쪽으로 옮겨 설치하는 방법이 비용 대비 효율적”이라며 “추가 장비 없이도 페달 조작 상황을 기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완성차 업계에서도 급발진 논란에 대응해 전자제어 시스템의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습니다. 최신 차량에는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이 동시에 밟힐 경우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우선시 하는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시스템(BOS)’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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