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우울·고립 심화된 한국 사회, '연결망 강화'로 풀어야
사회적 지원 높게 느끼면 우울증 위험 63% 감소
"사회적 관계가 힘", '사회적 처방'에 담긴 긍정적 취지 살려야
2025-05-28 09:44:24 2025-05-28 16:09:50
서초구 보건소에서 진행한 ‘서로를 살리는 관계학교’ 교육. (사진=서울시자살예방센터)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최근 한국 사회에서 우울과 불안, 자살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29.7%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우울증 경험률은 7.7%, 불안장애 경험률은 9.3%에 달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살률입니다. OECD 국가 평균(10만 명당 11.3명)의 2배 이상인 23.5명을 기록하며, 20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정신건강 역시 악화되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40% 이상이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답했고, 4명 중 1명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연결망이 약화된 탓”이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정신건강 문제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사회적 단절’이 꼽힙니다. 지난해 발표된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연구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우울증 발생률이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보다 약 2.5배 높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사회적 처방’이 던지는 교훈 – 우울증 증상 35% 감소하기도
 
이러한 가운데 미국의 상황은 우리에게 경각심과 동시에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APA)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 성인 5명 중 1명(21%)이 현재 정신건강 문제를 앓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청소년과 젊은 층의 정신질환 증가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는 2024년 보고서에서 "미국 청소년(13~18세)의 약 44%가 지속적인 슬픔이나 절망을 느끼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팬데믹 이전의 37%보다 급격히 증가한 수치입니다.
 
미국의 사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사회적 연결망 회복을 위한 적극적 정책 추진입니다. 미국은 최근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이라 불리는 정책을 의료 시스템에 도입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 대신 지역사회 내 자원봉사 활동이나 동호회 가입 등 ‘사회적 관계’를 처방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적 처방을 받은 환자의 우울증 증상이 6개월 만에 3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정신건강 문제를 공중보건의 주요 과제로 삼아, 지역 커뮤니티를 활용한 사회적 관계 형성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정신건강센터를 두고 상담부터 사회 참여 활동까지 폭넓게 연계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캘리포니아 주민의 정신질환 치료율은 지난 5년간 약 20%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적 연결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습니다. 미국 브리검영대학(Brigham Young University) 연구팀은 148개의 연구를 메타분석하여 사회적 관계와 사망 위험 간의 연관성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사회적 관계가 풍부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생존 확률이 약 50%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사회적 고립이 조기 사망 위험을 2배 가까이 증가시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연구진은 “사회적 연결감이 흡연 금지나 운동 등 건강 행동만큼이나 건강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합니다.
 
2023년 『Psychiatry Research』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사회적 지원을 높게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 위험이 63%, 수면 품질 저하 위험이 52%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적 관계망과 지원 체계가 정신건강 유지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를 살리는 관계학교, 정신건강 증진의 새로운 모델로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사회적 연결감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지역 내 주민 간 소규모 모임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케어' 프로그램을 확대해 왔습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가 개발한 중장년 맞춤형 프로그램 '서로를 살리는 관계학교'가 중장년층 자살 예방과 정신건강 증진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2024년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회복지 교수 등 분야별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2025년 1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2025년 상반기에는 서초구 보건소를 포함한 서울시 내 11개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참가자의 90% 이상이 높은 만족도와 함께 프로그램을 수료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특징은 중장년층이 겪는 심리적 위기와 사회적 고립 문제를 관계 중심의 실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육 참여자들은 우울과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인 관계 형성 전략과 소통 방법을 배우며,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실습 중심의 수업을 진행합니다. 또한, 참여형 워크숍과 대화 시연을 통해 스스로가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실천 능력을 키웁니다.
 
이수비 대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장년층은 퇴직, 가족의 변화, 건강 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심하게 겪는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지원뿐 아니라 실질적인 사회적 관계 구축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서로를 살리는 관계학교'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심리적 위기를 완화하면서 사회적 유대감을 크게 증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정신건강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사회적 연결감 회복을 위한 정책적 접근이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개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계의 문제'로 정신건강을 다시 바라볼 때가 됐습니다. 사회적 관계망 강화를 위한 노력이 보다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길 기대합니다.
 
'서로를 살리는 관계학교' 교육을 수료한 생명지킴이들. (사진=서울시자살예방센터)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