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광주광역시 기반 중견 건설사인 영무건설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올해만 10개의 중견건설사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건설 원재자가격 상승과 경기침체로 지방 미분양 물량이 급증하면서 지역 기반 건설사들은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백기를 드는 상황입니다.
준공 후 미분양, 이른바 '악성 미분양' 주택 증가로 대표되는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21대 대선을 앞둔 현재 주요 정당 후보들의 지역 부동산 경기 회복, 서울-지방 간 부동산 양극화 해소 방안을 담은 공약이 부실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고 있습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 해소를 위해 더욱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지방 미분양 주택, 가파른 증가세…무너지는 지방 중견건설사
29일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6만8920호로 나타났습니다. 정점을 찍은 1월의 7만2600여호보다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문제는 준공 후 미분양, '악성 미분양'이 매월 증가하는 것입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 할인분양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3월 말 기준 전국 악성 미분양 주택 수는 2만5117호를 기록했습니다. 한 달 전이었던 2만3722가구보다 1400호 가량 증가했습니다. 3월 말 전국 악성 미분양 주택 물량 중 수도권(△서울 644호 △경기 2280호 △인천 1650호)을 제외한 지방 악성 미분양 주택 수는 2만543호로 지난해 같은 달의 9933호보다 무려 1만610호나 증가했습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3월 말 기준 △대구 3252호 △경남 3026호 △경북 2715호 △전남 2392호 등에서 악성 미분양 가구수가 2000호를 넘었습니다. 제주도 1650호로 악성 미분양 가구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지방 미분양 가구수 증가세가 빨라지면서 지방 중견건설사들은 자금 회수 등에 어려움을 겪으며 차례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지난 28일 영무건설(2024년 시공능력평가 111위)를 비롯해 연초 신동아건설(58위), 삼부토건(71위) 등 시공능력평가 100위권대 건설사 10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법정관리 신청조차 못하고 폐업에 이르는 업체 수도 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1일부터 4월 말까지 종합건설업체 폐업신고 건수는 213건으로 200건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최근 5년 이내 가장 빠른 속도입니다.
한 지방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건설경기 악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다 그나마 회사운영을 버티게 해줄 발주물량까지 씨가 마르고 있다"며 "지방 인구 감소 추세가 가팔라지면서 미래 전망도 더 어두운 실정이다. 최근 건설업계 7월 위기설도 돌고 있는데, 올해 말까지는 매월 위기설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지방 건설·부동산 시장 악화에 업계는 정부가 하루 빨리 미분양 해소 등 관련 방안을 내놓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장 코 앞에 닥친 21대 대선후보들 조차도 관련 공약이 전무하거나 부실한 실정이어서 업계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또다른 지방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장에서 준공을 완료한다고 해도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모든 금융비용을 떠안게 되는 실정"이라며 "그저 몇몇 지방 부동산 시장의 사정으로 치부하는 목소리에 상처도 크다. 서울과 수도권만 대한민국은 아니지 않나. 좀 더 적극적인 세제 혜택 등을 주면서 지방 미분양을 해소해야하는 게 업황 반등을 위한 첫 과제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방 부동산 활성화…"세제 혜택·수도권-지방 이원화 정책 필요"
실제 주요 대선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은 '주택공급확대'에만 치우친 경향이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전세사기 대응, 서민층 주거복지 등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지역 부동산 회복 관련 공약은 없는 상황입니다.
비수도권주택 취득세 면제 공약을 내세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경우 취득세가 지자체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재정 지원이 없다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서는 재원 부족을 이유로 취득세 면제를 반대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송정은 기자)
고준석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상남경영원 교수는 "지역 경제, 지역 부동산 시장이 어려워지면 전체 국가 경제의 위기도 초래할 수 있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집권 후에는 지방 부동산 시장을 살릴 수 있는 세밀한 정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방 미분양 주택 구입 시 세제 혜택을 주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취득세보다는 양도세 면제가 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뿐만 아니라 지방 임대 사업자에 대한 세제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부동산 정책 수립 시 서울·수도권과 지방 부동산 시장을 나누는 이원화 방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수도권가 지방 부동산 시장을 다르게 보는 이원화 정책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며 "다만 수도권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평택시는 수도권에 속하지만 악성 미분양 통계치가 지방에 근접하게 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수도권에서도 서울 한강 벨트와 과천, 분당, 판교, 용인 정도를 제외하면 부동산 시장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방 인구 감소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지방에도 양질의 일자를 만들어야 사람이 살고 그래야 미분양 주택 해소도 가능해질 것이라 본다. 결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업계는 물론 관계 기관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해소 방안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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