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유지웅 기자]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사이, 달러 대체통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중국 위안화의 입지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중국 정부의 위안화 국제화 움직임이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은 아직 달러화에 한참 못 미치지만, 위안화 가치와 거래 비중을 높여 달러 중심 통화 패권주의에 도전하는 중국 정부의 의지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유럽연합(EU) 역시 달러의 대안으로 유로화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기축통화 넘보는 중국 "위안화 결제 비중 늘려라"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은행 거시건전성평가(MPA) 조정의 일환으로 위안화 표시 무역 거래 비율의 하한선을 25%에서 40%로 올렸습니다. 즉 인민은행이 자국 주요 은행에 국제 무역 거래시 위안화 사용 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는 은행의 경우 관련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향후 사업 확장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의무 규정은 아니지만, 사실상 강제성을 지닙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상황에서 위안화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실제 중국 정부는 그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위안화의 위상 강화를 꾀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 시중 은행들은 위안화 사용 확대를 위해 무역업체들에 서비스 수수료를 할인해주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인민은행을 비롯한 당국이 금융 중심지인 상하이의 국제 금융서비스 편리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무역금융 시장에서 위안화 점유율은 7.4%까지 올라 6.2%인 유로화를 앞질렀습니다. 아직 달러화가 82.1%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위안화 상승세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 사실에 시장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일본이 지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국제화에 실패했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통화전쟁에 대비해 왔습니다. 현재 중국이 위안화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은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 사용 확대 △중국 전자결제서비스 위챗페이 해외 진출 △통화스와프 계약 확대 등 3가지로 요약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중국이 자체 개발한 CIPS에 참여하는 은행은 지난 3년간 30%가량 증가해 약 1667개에 달합니다.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국민은행이 중국의 위챗페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중국의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도 40개국을 넘어섰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위안화 표기 거래 비중의) 급격한 상향 조정은 중국이 글로벌 무역에서 위안화 사용을 가속하려는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라며 "트럼프의 전방위 관세 부과로 달러 기반 자산의 매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위안화 수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틈새 파고드는 EU "달러 신뢰 약화, 유로화에 기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달러화 위상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세계 3대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동 조치는 미국 자산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달러는 미 국채와 함께 시장 가치가 떨어지며 안전자산의 신뢰성에도 금이 갔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면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달러 위상이 흔들리는 틈을 파고드는 것은 중국뿐만이 아닙니다. EU도 달러의 대안 화폐로 유로화 위상을 높이려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달러화의 신뢰가 흔들리면서 유로화가 대안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 한 연설에서 세계 경제의 개방성과 다자간 협력이 보호주의와 힘의 경쟁으로 대체되고 있다면서 "이 체제를 떠받치는 달러의 지배적 역할에 대한 불확실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일어나는 변화는 '글로벌 유로화 시대'를 열어주고 있다"며 "유로화의 영향력은 기본적으로 얻는 것이 아닌, 스스로 얻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분기 기준 각국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은 64.7%인 가운데, 유로화 19.3%, 엔화 4.5%, 위안화 1.1%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에는 달러 비중이 57.4%로 떨어진 반면, 유로화 20.0%, 엔화5.8%, 위안화 2.2% 등은 소폭 증가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라가르드 총재 발언에 대해 "유럽 당국자들이 글로벌 무역과 미국 기관에 대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을 자신들의 이점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달러 패권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은 국제 통화 전문가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다이슨 응용경제정책학과 교수의 기고문을 인용해 "달러의 지배적 지위는 다른 나라가 탈환하지 않는 한 유지될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은 자본 이동을 제한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유럽은 정치적 불안정성과 재정 악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달러의 지위는 오히려 불안해 보이지만 달러를 밀어낼 만한 통화가 없다는 점에서 미국 입장에서는 운이 좋은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지난 4일 촬영된 사진에 미국 달러, 유로, 중국 위안화 및 파운드 지폐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박진아·유지웅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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