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와 탐사보도)④천공 의혹에 붙여진 '청담동 술자리' 주홍글씨
언론사나 간부가 아닌 취재기자들만 고발당해
출입정지 당한 기자들 용산 카페에서 취재
'가짜뉴스 프레임' 과연 천공이 아니었을까
2025-05-07 06:00:00 2025-05-07 06:00:00
대통령집무실 인근 용산공원이 시범 개방된 2022년 6월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가 천공의 관저 개입 의혹을 보도한 다음 날인 2023년 2월3일. 대통령실은 즉각 반박문을 내놓았다. '<뉴스토마토> 등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다음은 주요 내용. 
 
대통령실은 악의적, 반복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고 확산하는 행위에 대해서 일관된 기준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천공이 왔다고 들은 것을 들은 것을 들었다'는 식의 '떠도는 풍문' 수준의 천공 의혹을 책으로 발간한 전직 국방부 직원과, 객관적인 추가 사실 확인도 없이 이를 최초 보도한 두 매체 기자들을 형사 고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의 말로 전달된 풍문이 정치적 목적으로 가공될 때, 얼마나 허무맹랑해질 수 있는지 '청담동 술자리 가짜 뉴스' 사례를 통해 국민들께서 목도하셨을 것입니다.(생략)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 말미에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썼다. 이 탐사보도만이 아니었다. 윤석열정부는 여러 건의 비판 보도에 '청담동' 주홍글씨를 붙였다. 왜 청담동 술자리는 단골 메뉴가 됐을까.
 
2022년 10월24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법무부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2022년 10월24일 국정감사장에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향해 관련 의혹을 제기한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고 두 달 뒤인 7월20일 새벽에 서울 강남구 청담동 술집에서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장관 등이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수십 명과 함께 술자리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김 의원은 청담동 술집에서 이들의 회동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첼리스트의 녹취도 틀었다. 이 첼리스트가 전 남자 친구와 나눈 전화 통화였다.
 
한 장관은 김 의원 측이 튼 녹취를 듣자마자 "장관직 포함해 앞으로 제가 일할 모든 공직을 걸겠다. 김의겸 의원은 무엇을 걸겠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유튜브 채널인 <시민언론 더탐사>는 이날의 법사위 풍경을 포함해, 첼리스트와 전 남자 친구의 통화 내용을 자사 유튜브에 공개한다. 다음날, 대통령실은 즉각 입장을 내놓았다.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동선과 관련해 완전히 꾸며낸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면책특권에 기대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에 자신이 있다면 국회 밖에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생략)
 
술자리를 목격했다는 첼리스트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첼리스트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전 남자 친구에게 거짓말한 내용을, 그 남자가 <더 탐사>에 제보해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첼리스트는 재판에서도 "태어나서 한 번도 윤석열·한동훈 두 분을 본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더 탐사> 측은 첼리스트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그런 술자리가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를 이어갔다. 이에 주류 언론은 청담동 보도의 약점을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추적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시사 유튜브가 정파적이고 검증이 부실하며,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다는 부정적인 선입관도 작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시 천공 의혹 보도로 돌아간다. <스픽스>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관련 의혹이 나온 것은 2022년 12월4일이었다. 대통령실은 관련 의혹을 반박하는 공시를 하고 김종대 전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씨를 고발했다. 그 이틀 뒤인 12월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김의겸 의원과 <더 탐사>를 대상으로 1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천공 보도와 청담동 보도 프레임은 이렇게 연결됐다. 
 
역술인 천공이 1월17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3층에서 수행원 및 지인들과 탑승 수속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보도 이후 다섯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국방부를 방문한 사람은 '천공이 아니라 백모씨'라는 <KBS>의 단독보도가 나온다. 천공과 백씨의 외모는 긴 흰수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외형은 그리 닮지는 않았다. 이후 경찰은 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 천공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허위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관계자들을 검찰에 송치한다고 발표했다.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최병호 기자는 필자에게 "군대의 보고 체계 특성상 천공과 백씨를 착각할 수 없다"고 했다. 최 기자는 육군 장교로 복무를 했다. 군사지역 안으로 누가 방문을 하면 이름, 인상착의, 방문 시간, 머문 시간, 방문 경로, 기타 특이 사항까지 일일이 확인해서 몇 단계를 거쳐 보고하게 된다. 당시 한남동 공관 관리관의 계급은 원사였다. 군 생활을 20년 가까이 한 사람이다. 원사의 정보는 참모총장에게 직보되는 게 아니라 3~5단계를 거쳐 올라간다. 명색이 대한민국 육군 최고 지휘관에게 보고되는 사항인데, 군대 보고 체계를 고려한다면 천공과 백씨를 착각해 보고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최 기자는 말했다. 아울러 KBS 단독보도와 경찰 발표의 시점도 미심쩍게 생각했다. 
 
최 기자는 기사를 쓸 때 이미 수사를 각오했다. 예상대로 대통령실은 보도 다음날 바로 고발장을 냈다. 다만 대통령실이 언론중재위에 조정 신청을 한 뒤 <뉴스토마토> 법인, 대표이사, 편집국장, 해당 기자를 차례로 고발할 줄 알았다. 기사를 작성한 일선 기자들만 고발했다. <뉴스토마토> 김기성 편집국장은 "일선 취재기자만 고발한 것은 기자들의 후속 취재를 막으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기자 개인을 직접 고발한 점은 언론만 아니라 문제된 언론에 협조하는 사람도 함께 고발하겠다는 시그널이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의 고발 이후 추가 증언을 하기로 한 제보자는 입을 닫고 숨었다. 
 
이 보도를 계기로 <뉴스토마토>는 대통령실 출입을 취소당했다. 천공 관저 개입을 보도했던 11개월 만인 2024년 1월이었다. 대통령실은 <뉴스토마토>에게 1년간 출입기자 교체를 요청했는데, 이에 응하지 않고 별다른 언급이 없어서 언론사 출입 등록을 취소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기성 국장은 "겉으로는 출입기간 미준수를 내걸었지만 비판적인 보도에 대한 통제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 출입기자를 교체하면 출입을 허용하겠다는 공지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돌연 언론사 출입 등록 취소를 통보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조치는 "찍히면 취재 못 하게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언론 전반에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취재팀은 여겼다. 최병호 기자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저희가 대통령실에서 퇴출될 때도 출입기자단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정권에게 고발당한 언론사를 편들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권력의 감시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의 사회적 직능으로 볼 때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실 퇴출은 <뉴스토마토> 입장에서는 큰 불이익이 아닐 수 없었다. 퇴출되면 당장 취재가 제한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더구나 권력의 꼭대기 출입처 아닌가. <뉴스토마토> 기자들은 용산 근처 카페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야 했다. 
 
<뉴스토마토> 내에서는 대통령실을 업무방해로 법적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언론을 탄압한 윤석열정권한테서 핍박을 받고 대통령실에서 퇴출된 언론사가 있다는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천공 개입 의혹 보도는 뒤이어 나오는 강력한 Dog傳의 밑거름이 됐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역술과 주술에 영향을 받는 권력. 이 프레임은 대중에 강력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에밀 졸라의 축적은 폭발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규연 탐사저널리스트(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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