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기자] 주식시장에서 석유화학 업체들이 모처럼 강하게 반등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실적 개선은 요원해 보이지만 주가엔 기대감이 배어있습니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의 저가 공세가 감소할 것이란 전망 덕분입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넘게 갇혀 있던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이날 3.63% 오른 6만57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지난 12일 5만3400원으로 최저가 기록을 쓴 지 4영업일 만에 23% 상승한 것입니다. 지난주 13일 10%대 강한 반등세를 기록한 후 하루 조정을 거쳐 이번 주 다시 상승을 이어받은 모양새입니다.
롯데케미칼이 12일에 기록한 주가는 지난 2009년 3월13일에 남긴 5만3300원 이후 장장 16년 만에 쓴 최저가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LG화학 역시 지난 4일 8년 만의 최저가 21만3000원에서 이날 23만9000원으로 12.2% 상승했습니다. 대한유화의 경우 지난해 12월9일 5년 래 최저가 6만8700원을 찍고 반등해 12일 1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주가만 보면 기초화학 소재를 만드는 국내 기업들이 긴긴 터널을 빠져나올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롯데케미칼 충남 대산공장 전경.(사진=롯데케미칼)
중국 대규모 저가 공세에 장기 침체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조7033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3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의 부진은 그룹사에도 악영향을 끼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고전 중인 롯데건설과 함께 롯데그룹을 유동성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원유를 정제해서 얻은 나프타를 다시 분해해 에틸렌(EL), 프로필렌(PL)과 같은 기초화학 소재를 만드는 기업입니다. 나프타를 분해하는 설비(NCC, Naphtha Cracking Center)의 이름을 따 화학산업 중에서도 NCC로 분류하며, 국내에선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를 ‘빅3’로 꼽습니다.
석유화학 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대부분 수년간 침체에 빠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NCC가 유독 심해서 지난 3~4년간 지옥의 터널을 지나야 했습니다. 중국발 공급 과잉, 저가 공세로 침체가 장기화됐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오랜 기간 석유화학제품 수요처였으나 2019년부터 최대 생산국으로 변신했습니다. 더구나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란에서 저가에 원유를 우회 수입해 원가를 대폭 낮춘 제품을 시장에 대량 공급했습니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2565만톤에서 2023년 5174만톤으로 단기간 내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 NCC 업체들의 중국향 수출비중이 하락한 것은 물론 가동률도 평균 70%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결국 침체를 견디다 못한 LG화학이 2조원을 들여 증설한 여수 NCC2공장을 가동 2년 만에 매각을 추진하게 됐고, 롯데케미칼은 LG화학에 NCC 부문을 통합하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빅딜 논의는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기업들은 각자 일부 사업 매각, 가동 중단 등 자구 방안을 진행 중입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대이란 강력 제재…에틸렌 마진 소폭 반등
속속 대규모 적자를 발표하는 중이고 빅딜은 성사되지 못했고 구조조정은 진행 중인데 주가가 강하게 반등한 것은 기대감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이는 정책에 서명했습니다. 중국의 원유 우회 수입 경로까지 차단해 이란의 수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의도입니다.
현재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3분의 1가량이 이란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이 배럴당 10~20달러 싼 이란산 원유를 공급받지 못할 경우 중국의 공세가 약해져 국내 석유화학제품 가격도 지금보다는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업계의 숨통이 조금 트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프타 분해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물질이 에틸렌이라서 에틸렌 스프레드(나프타가격과 에틸렌가격의 차액)가 석유화학 시장의 지표로 활용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이 스프레드가 소폭 개선되고 있습니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1월 톤당 158.2달러였던 에틸렌 스프레드는 2월 들어 평균 180달러까지 오른 상태입니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톤당 250~300달러는 넘어야 이익이 발생해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앞서가 주가에 반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경우의 재건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나 운임 하락, 환율 효과도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요소입니다.
백영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수요개선은 여전히 문제이지만 공급과잉은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중국의 에틸렌 신증설 규모를 200만톤, 올해는 700만톤으로 추정했습니다. 백 연구원은 “지금은 심각한 불황이지만 조심스럽게 올해 하반기부터 2027년 상반기까지 ‘작지만 기다리던 알래스카의 짧은 봄’은 가능하다”고 내다봤습니다.
LG화학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 비중이 큰 데다 양극재 부문도 커서 전체 실적은 이차전지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화학 부문은 뚜렷한 개선이 전망됩니다. 미래에셋증권은 LG화학의 화학 부문 영업이익을 지난해 1360억 적자에서 올해 828억원 흑자전환으로 예상했습니다.
다만 iM증권은 아랍에미레이트(UAE)의 국영석유회사 ADNOC와 사우디 아람코의 공격적 행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ADNOC는 유럽과 북미 석유화학업체들을 합병하거나 지분 투자 중이고, 아람코는 시노펙과 합작으로 정제설비와 분해시설 건설을 추진하는 등 업스트림 중심의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오일머니를 앞세워 석유화학제품으로 영역을 넓힐 경우 장기적으로 국내 기업들에게도 위협이 될 전망입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