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국내 주요 부동산 신탁사들이 지난해 4분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경기 악화로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책준)'이 발목을 잡아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부동산신탁사 14곳의 지난해 4분기 합산 순손실은 4055억원입니다. 연간 누적으로는 손실규모가 자기자본 대비 11% 수준인 6322억원까지 늘어났습니다. 신규 수주 감소에 따른 신탁 보수 축소로 수익 창출력이 떨어졌고, 개발신탁 관련 대손부담이 확대되면서 비용이 증가한 것인데요.
신한자산신탁, 무궁화신탁, 교보자산신탁, KB부동산신탁, 대신자산신탁, 코리아신탁, 우리자산신탁, 코람코자산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한국토지신탁 등 10곳은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2023년 대비 실적이 개선된 업체는 책준형 개발신탁 상품에 대한 부담이 낮은 대토신, 코람코, 한토신입니다.
시행·건설사들이 도산하면서 부동산신탁사가 자체계정으로 투입한 자금 역시 지난해 말 8조원에 달했는데요.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신탁사 14곳의 신탁계정대여금은 7조7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2023년 12월 4조9000억원에서 1년새 약 3조원 가량이 증가한 것입니다. 부채비율 역시 같은 기간 80.9%를 기록하며 2023년 1분기 말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이 가운데 무궁화, 한국투자, 대신, 신한, 대한, KB 등은 부채비율이 100%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신탁계정대 증가와 자산건전성 저하로 부동산신탁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관리 부담은 증대되고 있습니다. 신용평가사는 올해 1월 금융위원회에서 예고한 '토지신탁 내실화를 위한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이 적용되면 책임준공확약 관리형 토지신탁과 혼합형 토지신탁 등과 관련된 책임준공 확약 익스포저가 큰 회사들의 NCR 관리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수백억대 소송에 직면…올해 재무전망 '비우호적'
책준형 신탁을 둘러싼 소송 건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건설사업이 중단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공사비가 급증하고, 업황이 악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인데요. 시공사가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하거나 건설사가 파산하면서 책임준공을 약속한 신탁사에 다수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KB부동산신탁은 최근 서울 도시형 생활주택과 부산 오피스텔 개발 사업 대주단으로부터 책준 의무 미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첫 소송이 제기된 지 4개월만입니다. 신한자산신탁도 다수의 사업장에서 소송에 휘말렸는데요. 지난해 소송 관련 충당금이 포함된 순손실이 3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 신탁사의 손해배상 규모가 법리적으로 정리된 상태가 아닌 만큼 손해배상 소송 결과에 따라 재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책준형 토지신탁과 관련한 우발부채 위험이 커지면서 신용등급도 하향조정됐습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하반기 정기평가에서 신한자산신탁의 단기신용등급을 기존 A2에서 A2-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코리아신탁 장기 신용등급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전망치를 한 단계 낮춰 잡았습니다. 상반기 양사의 신용등급은 이미 한 단계씩 내려간 상태였죠.
신평사들은 신탁계정대와 소송 관련 우발부채 부담, 위축된 수주 현황 등을 고려할 때 올해 사업과 재무전망은 비우호적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여윤기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최근 차입형 개발 신탁 수주실적의 상당 부분은 도시정비 사업으로 구성돼 사업 진행 속도에 따라 수익 인식 시점도 지연되는 편"이라면서 "이를 감안할 때 수익규모 감소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사업장 분양성과가 예상보다 저조하면 재무안정성 관리부담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책준형 개발신탁 관련 소송위험이 상존하는 점 또한 재무안정성 측면의 부담요소"라고 부연했습니다.
김선주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신탁계정대 급증과 자산건전성 저하로 대손비용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차입조달 증가로 부채비율도 상승하고 있어 수익성 및 재무건전성 저하 폭이 각 사 신용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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