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유근윤 기자] 국민의힘의 2차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이 우여곡절 끝에 초읽기에 들어갔다. 2일 권성동 원내대표는 상임전국위원회를 개최, '현재 당이 비상상황에 해당한다'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당헌 96조(비상대책위원회)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권 원내대표는 5일 전국위를 소집해 당헌 개정안이 최종 의결하고, 이른 시일 안에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 등을 뽑아 추석 전 2차 비대위를 공식적으로 출범시킨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가 2차 비대위에 대해서도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추가로 제기하겠다'라고 경고함에 따라 국민의힘은 정기국회 내내 법적 다툼과 내홍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두현 전국위 부의장(의장 직무대행)과 박형수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상임전국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회의에선 당헌 96조 개정안과 5일 전국위 소집요구안을 논의했다"며 "총 55명 중 32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헌 개정안은 만장일치로 가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달 30일 의원총회를 열고 당헌 96조 1항을 개정해 새 비대위을 출범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개정의 핵심은 '당을 비상상황으로 볼 수 있는 요건'에 관한 것. 현행 당헌 96조 1항은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대위를 둘 수 있다"고 규정됐다. 그런데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이라는 대목이 애매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이걸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리하자는 취지다. 이에 국민의힘은 법률지원단장인 유상범 의원의 제안에 따라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 궐위된 경우'를 비대위 전환이 가능한 비상상황으로 규정키로 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선출직 최고위원 중 4명(김재원·배현진·조수진·정미경)이 사퇴했기 때문에 지금의 당 상황으로도 비대위 전환이 '가능'해지게 된다.
2일 윤두현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부의장(의장 직무대행)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의힘은 개정안에서 당대표 및 최고위원의 지휘와 권한이 비대위 구성 완료로 상실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또 비대위원장이 궐위 또는 사고가 됐을 때 권한대행 또는 직무대행의 승계는 원내대표, 최다선 의원 순으로 맡는다는 규정도 신설했다. 비대위원 중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당연직으로 두는 항목도 만들었다.
국민의힘이 당의 비상상황에 관한 요건까지 부랴부랴 고쳐가며 새 비대위를 꾸리려는 건 지난달 2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이준석 대표가 당의 비대위 출범에 반발해 제출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당시 법원은 판결문에서 "국민의힘 전국위원회의 의결 중 비대위원장 결의 부분은 당헌 96조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당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및 정당법에도 위반되므로 무효로 보는 게 타당하다"면서 "본안 판결 확정시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라고 판시했다. 비대위를 굳이 두어야 할 정도로 당에 비상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대위 출범 자체가 무효이며, 그로 인해 주호영 의원도 비대위원장으로서의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국민의힘은 당헌 96조를 고치면 비상상황 요건에 관한 법적인 하자를 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8월26일 법원 판결이 비대위 자체가 아닌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만 정지시킨 데 주목했다. 박 원내대변인도 기자들에게 "법원 판결로 더는 비대위를 꾸리지 못하고 기존 최고위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법원의 주문엔 '비대위원장 직무를 정지한다'라고 되어 있다"면서 "직무정지는 그 부분만 효력을 미치기 때문에 최고위로 복귀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비대위원장 직무만 정지됐을 뿐이지 비대위는 유효하는 말이다.
당헌 개정안이 의총에 이어 상임전국위에서도 만장일치로 가결됨에 따라 5일 전국위에서 의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는 4차 법적 대응을 예고하며 결사항전에 나섰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법률대리인단을 통해서 "제2의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이 임명될 경우 직무정지 가처분을 또 한 번 신청할 예정"이라고 선언했다. 앞서 이 대표는 1차 비대위 출범 때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일부 인용 판결을 받아낸 데 이어 지난달 29일엔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해 나머지 비대위원 8명의 직무도 정지시키는 가처분신청을 추가로 접수했다. 이어 1일엔 당의 전국위 개최를 막아달라면서 3차 가처분신청도 제기했다.
8월29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구시 달성군의회를 방문해 국내연수를 떠나는 기초의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대표는 4차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이유로 당헌 96조 개정을 통한 2차 비대위 출범이 당의 비상상황을 사후적·자의적으로 충족시킨다고 지적했다. 또 기존 최고위 해산과 당대표 해임 등 처분적 성격의 조항을 소급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1일 3차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면서 "'최고위원 4인 사퇴'를 비상상황으로 규정하는 당헌 96조 1항 개정안을 의결할 전국위는 개최되어선 안 된다"며 "이 개정안은 비상상황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처분적 성격의 조항을 소급적용하는 조항으로, 당원의 민주적 총의를 모으는 전당대회 추인 없이 소수의 전국위 의결만으로 당헌을 개정하는 반민주적·반헌법적 조항"이라고 주장한 건 이런 맥락이다. 당헌 개정을 통한 2차 비대위 역시 '정당 민주주의'와 '당원의 총의' 등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도 가처분 이의신청(8월26일)과 집행정지신청(8월29일)을 연이어 제출했다. 이 대표의 2·3차 가처분신청과 주 전 위원장의 이의신청 심문은 14일 동시에 진행된다. 1차 가처분신청 때 이 대표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가 이번 심문을 또 진행하고,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진술을 다루기 때문에 사실상 이 대표의 가처분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국법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을 지낸 전재경 박사는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가처분신청에서 명백한 판단 오류가 있었거나 새 증거가 발견될 때 가능하다"고 했다. 이럴 경우 2차 비대위도 출범했다가 바로 직무가 정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당은 또 혼돈에 빠지게 된다. 당헌 개정과 2차 비대위 출범에 반발해 전국위 의장을 사퇴한 서병수 의원과 조해진 의원 등은 "또 가처분이 인용되면 당은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이고, 만신창이가 된다"라고 우려했다.
최병호·유근윤 기자 choib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