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민주당 의원, 당대표 등을 거쳐 21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변방 장수'에서부터 시작해 국가원수까지 올라간 겁니다. 하지만 그도 크고 작은 선거에서 여러 번 졌습니다. 정치에 입문하던 2000대 중반엔 성남시장 선거와 18대 총선에서 거푸 떨어졌습니다. 이 대통령이 경험한 패배 중엔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 탈락, 20대 대선 낙선도 있습니다.
성남시장 때부터 이 대통령을 전담 취재하면서 여러 패배를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선거에서 떨어진 이후 누구처럼 군색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며 시간을 허비하거나 민심을 잃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낙선을 계기로 새로운 정치적 기회를 찾아냈습니다.
19대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된 상황에서 치러졌습니다. 당시 민주당 경선에선 문재인 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19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은 문재인 후보, 안희정 후보에 이어 3위로 경선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경선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경선 현장 투표는 전국 동시로, 자동응답시스템(ARS)과 대의원 투표는 날짜를 달리해서 진행됐습니다.
문제는 2017년 3월22일 현장 투표가 끝나자마자 인터넷에서 후보별 득표율이 유출된 겁니다. 득표율 유출은 누군가가 '대세론'을 형성하려고 고의로 저질렀다는 의혹으로 번졌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성스럽기로 유명했던 이 대통령의 지지자들(손가락혁명군)은 경선 부정을 주장하며 시위까지 했습니다. 일부는 이 대통령에게 경선보다 탈당을 해서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부추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경선 부정과 탈당론을 일축했습니다. 그는 당시 "나는 정치 입문을 민주당으로 했고, 그동안 한 번도 민주당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며 "민주당을 믿고 민주당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말에 실망해 반이재명으로 돌아선, 심지어 보수로 넘어가고 극우로 전향한 지지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경선 낙선 뒤 바로 경기도지사 선거를 준비했고, 7회 지방선거에서 도지사에 당선됐습니다.
20대 대선은 더 드라마틱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씨에게 24만7077표(0.73%포인트) 차이로 졌습니다. 역대 대선 최소 득표 차 패배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보궐선거를 준비, 3개월 만에 인천 계양을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대선 후 낙선의 원인과 민심을 분석하고 차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 끝에 새 정치적 기회를 찾은 겁니다.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주당에선 부정선거의 '부' 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 역시 보궐선거 유세 때 대선 낙선의 억울함을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씨는 20대 대선에서 이겼고, 국민의힘은 8회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지만 부정선거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윤씨는 결국 지난해 12월3일 입법 독재를 비판하고 헌법 질서를 지키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됐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특검의 4차례 소환에 불응하고, 내란 혐의 재판도 3번 연속 불출석하고 있습니다. 변호인단과 측근들을 통해 전해진 내용을 보자면 윤씨는 여전히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엔 윤씨를 옹호하며 부정선거를 주장한 전한길씨가 입당했습니다. 그러나 의원들은 방관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진 원인을 찾아 새로 거듭나려는 노력, 정치적 방향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동력을 잃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내년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다가올 23대 총선의 결과도 불 보듯 뻔합니다. 침몰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최병호 공동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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