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유근윤 기자] 국민의힘이 법원 판결로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가 좌초되자 새 비대위 출범으로 총의를 모았다. 27일 의원총회에서 이미 결의했지만, 당내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30일 의원총회를 다시 한 번 소집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다. 중진들의 반발이 여전한 데다 당헌 개정을 위해서는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국위 의장으로 소집 권한을 갖고 있는 서병수 의원은 "두 번의 실수는 없다"며 소집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의장이 '궐위'나 '사고'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부의장이 사회권을 쥘 수도 없다. 의총 결의대로 서 의원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추석 전 새 비대위 출범은 물리적으로 어렵게 됐다는 전망도 나왔다.
국민의힘은 30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당헌 96조(비상대책위원회)를 개정해 새 비대위을 출범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개정의 핵심은 '당을 비상상황으로 볼 수 있는 요건'에 관한 것. 당헌 96조 1항은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대위를 둘 수 있다"고 규정됐다. 그런데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이라는 대목이 애매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이걸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리하자는 취지다. 이에 국민의힘은 당 법률지원단장인 유상범 의원의 제안에 따라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 궐위된 경우'를 비대위 전환이 가능한 비상상황으로 규정키로 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선출직 최고위원 중 4명(김재원·배현진·조수진·정미경)이 사퇴했기 때문에 지금의 당 상황으로도 비대위 전환이 '가능'해지게 된다.
30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의힘이 당의 비상상황에 관한 요건까지 부랴부랴 고쳐가며 새 비대위를 꾸리려는 건 지난 2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이준석 대표가 당의 비대위 출범에 반발해 제출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국민의힘 전국위원회의 의결 중 비대위원장 결의 부분은 당헌 96조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당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및 정당법에도 위반되므로 무효로 보는 게 타당하다"면서 "본안 판결 확정시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시했다. 당에 '비상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대위 출범 자체가 무효이며, 그로 인해 주호영 의원도 비대위원장으로서의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법원 판결로 주호영 비대위는 18일 첫 회의 후 일주일 만에 공중분해됐다. 급해진 국민의힘은 27일 긴급 의총을 연 데 이어 29일 권성동 원내대표가 비대위 전체회의를 주재한 끝에 추석 전까지 새 비대위를 꾸리기로 했다. 권 원내대표가 원내대표 자격으로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비대위원들도 사퇴 없이 직책을 수행해 새 비대위 출범을 돕기로 했다. 이번 당헌 개정은 새 비대위로 가는 첫 관문이었던 셈.
거듭된 의총 결의에도 당 안팎에선 추석 전까지 새 비대위를 꾸리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법원이 이준석 대표의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 '당은 비상상황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게 결정적이다. 새 비대위를 만들더라도 이 대표가 또 다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면 같은 판결에 부딪힐 수 있다. 국민의힘이 의총에서 비상상황 요건을 더 구체적으로 다듬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후적으로 비상상황을 충족시키는 데 불과하다. 더구나 개정안은 '당대표 해임을 목적으로 선출직 최고위원 4명 이상이 의도적으로 사퇴할 때'엔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가 뒤따른다. 이 경우 법원이 이 대표의 손을 들어주면서 강조한 '정당 민주주의'와 '당원의 총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29일 서병수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의장이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헌 개정의 권한을 가진 전국위 문턱을 넘을 것인지도 미지수다. 전국위 의장인 서병수 의원은 이날 의총장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헌 개정을 위한 전국위 소집 여부에 대해 "할 생각이 없다"며 "(개정을)한다고 해도 또 똑같은 (법원)가처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은 전날(29일) 기자회견에서도 "법원 판단으로 현재 당의 상황이 '비상상황이 아니다'라고 결론이 났고, 법원의 결정은 마땅히 존중하는 게 우리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라며 "두 번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같은 절차나 과정을 밟아 같은 결론(새 비대위 출범)을 낼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특히 서 의원은 원내 지도부가 의총을 통해 당헌 개정을 당론으로 모아 전국위 소집을 압박하려는 것에 관해서도 "의총의 기능과 권한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도 주목을 해야 한다. 의총은 정책적 조율이 필요하거나 법안·예산을 처리할 때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중심으로 권한을 갖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비대위나 당 지도부를 결정하는 문제에서 과연 의총이 그 권한을 갖고 있는지 봤을 때 저는 '아니다'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권 원내대표는 서 의원이 전국위 소집에 불응하고 버틸 경우 전국위 부의장을 통해서라도 회의를 열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논란만 야기할 수 있다. 의장이 '궐위'나 '사고'가 아닌 멀쩡한 상황에서 소집 권한과 사회권을 박탈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그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고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내에서 권 원내대표에 대한 비토가 점점 힘을 얻는 것도 주목된다. 권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자격으로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았고, '내부총질' 문자 유출 책임 끝에 당대표 직무대행 직을 내려놨다. 이후 다시 원내대표 당연직으로 비대위에 합류했다. 이번에는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되자 다시 원내대표 자격으로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에 올라섰다. 윤상현 의원은 이를 "막장 드라마"라고 했고, 이준석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도 "코미디"라고 힐난했다. 여기에다 안철수·서병수·조경태·윤상현·김태호·하태경·최재형 의원 등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권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새 원내대표를 선출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권 원내대표는 새 비대위 출범 이후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맞섰다.
새 비대위 출범을 위해 이준석 대표의 가처분신청 자체를 무력화하는 방법도 있다. 주호영 의원은 비대위원장 직을 상실한 직후 법원 결정에 반발해 이의신청(26일)과 집행정지신청(29일)을 연이어 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것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낮게 바라봤다. 한국법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을 지낸 전재경 박사는 "이의신청 등이 받아들여지려면 가처분신청에서 명백한 판단 오류가 있었거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 가능하다"며 "가처분신청이나 이의신청이나 어차피 동일한 상황에서 똑같은 증거·진술 등을 다툴 텐데 완전히 정반대 결과가 나오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특히 주 의원의 이의신청 심문은 내달 14일로 예정됐다. 설사 법원이 가처분신청 결과를 뒤집는다 해도 판결은 추석 이후에야 나오게 된다. 새 비대위 구성이 추석 이후까지 지연될 경우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집권여당의 혼란은 명절 차례상까지 점령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최대 악재다.
최병호·유근윤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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