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는 오르가니스트 김희성(52·사진)이 내달 2일 파이프 오르간 독주회를 연다. 이번 공연의 무대는 1993년 첫 독주회를 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다.
김희성은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음대에 진학했다. 1987년 미국 어스킨 주립대학에서 피아노 오르간 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5년 귀국해 서른 넷의 나이에 이화여대 교수가 됐다.
현재 김희성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주회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분주한 상황이지만 26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특유의 따뜻함과 여유가 묻어났다. 이날 김희성이 가장 많이 쏟아낸 말은 다름 아닌 '감사하다'였다. '악기의 왕'이라 불리는 파이프 오르간처럼 포용력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연주회에는 지휘자 서진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함께 한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바그너의 곡으로 서문을 열고 이어 김희성이 헨델, 풀랑, 프랑크, 길망의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연주회 수익금은 극소저체중출생아의 의료비로 후원된다. 다음은 김희성과 주고 받은 일문일답.
-데뷔 20년이라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국내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20년 동안 큰 연주를 아무 사고 없이 해온 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거대한 악기기 때문에 중간에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다. 선이 끊어지거나, 소리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나는 그런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연주 중에는 그런 일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국내에 파이프 오르간을 갖춘 공연장이 얼마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어려운 점은 없나?
▲어렵다. 대부분의 공연장이 오르간을 위해 설계된 게 아니라서 음향이 좋지 않다. 또 악기를 지속적으로 써줘야 하는데 악기 사용료나 대관료가 비싸기 때문에 보통 1년에 단 몇 번 밖에 연주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간이 워낙 크다 보니 연주 외에 다른 것들도 신경 써야 하는 게 힘들다. 연습기간 중에는 다른 공연 시간을 피해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연습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좋아져서 오전에 연습하고 있다. 이렇게 큰 오르간을 만질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2007년부터 이대목동병원 이화백혈병후원회, 기아대책 등에 공연 수익금을 기부해왔다. 어떻게 기부를 시작하게 됐나?
▲일단은 학교에 있으니 연주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공연을 계속했다. 기부는 2006년도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남동생이 계기로 작용했다. 처음에는 기부 생각을 못했고 다만 '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남동생이 음악을 좋아했던 게 생각나서 기획사에 '암 환자를 연주회에 초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봤다. 모임과 연주활동, 기부를 함께 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래서 프로그램과 티켓을 팔기 시작했다.
꾸준히 오백만원 이상씩은 수익금이 생겼다. 백혈병후원회 목동병원에 후원을 하다가 지난해부터 기아대책 기구를 돕고 있다. 기아대책 쪽은 몇 년 전에 인연이 되어 만났는데, 나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면 분명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얘기를 들어보니 돈이 없어 의료 혜택 못 받고 죽어가는 초미숙아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더라.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가보자. 파이프 오르간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러가지 느낌을 다 맛볼 수 있는 악기다. 악기가 정말 크기 때문에 음폭이 엄청나게 넓다. 크고 웅장한 소리부터 작고 섬세한 소리까지 모두 나온다. 흔히 파이프 오르간을 '악기의 왕'이라고 하는데 오르간 소리 듣다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무척 단순하게 느껴진다.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해 달라.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만 연주하고 나는 헨델의 오르간 협주곡 내림나장조 HWV 290 op.4-2, 풀랑의 오르간 협주곡 사단조, 프랑크의 코랄 마장조, 길망의 오르간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1번 Op.42 등을 연주한다.
이 중 독주로 선보이는 곡은 프랑크의 코랄 마장조다. 개인적으로 오르가니스트 프랑크를 제일 좋아해서 매년 연주에 집어넣는다. 프랑크가 쓴 세 개의 코랄 중 한 작품이다. 작년에 이 곡을 제자에게 가르쳤는데 너무 좋았다. 따뜻하고 로맨틱하고... 말로 설명이 안 되는데(웃음).
-연주회를 하려면 체력도 관건인데 관리는 어떻게 하나?
▲콘체르토 하나 연주하는 데 20분 넘게 걸리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된다. 당일날 오후에 오케스트라와 처음으로 맞추는데 버텨 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체력을 위해 매일 3~4킬로씩 걸으면서 운동은 한다.
-앞으로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일단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고, 오르간이 정말 멋진 악기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하기 위해 끊임 없이 공부하려 한다.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굉장히 큰 오르간이 설치돼 있지만 사실 오르간 크기는 저마다 다 다르다. '오르간 빌딩'이라고 하지 않나. 집 크기가 저마다 다 다른 것처럼 오르간도 그렇다. 이대 김영희홀에 있는 오르간 같은 다른 오르간도 쳐 보고 있다. 내가 세종문화회관 오르간 덕분에 이 정도 성장했으니 이제는 학교에 있는 오르간을 외부에 알리고 싶다.
-이번 연주회에 대한 바람은?
▲소망하는 게, 사실 오는 분들에 비해 수익금이 많지 않다. 욕심이 많은 건지 모르겠는데, 작년에 손님이 많이 와서 1000만원 가량은 되겠다고 기대했으나 580만원이 걷혔다. 기아대책 회장님께서 이번에 축하의 글도 써 주셨는데 힘이 되고 싶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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