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②)찰스 부코스키와 마사유키, 비 오는 날 술 마시기
2025-09-26 06:00:00 2025-09-26 12:25:47
술과 관련해 글을 쓴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술을 보낸다,고 하면 그럼 그렇지 할 것이다. 근데 책을 보낸다. 이 글이 추구하는 것과 같이 찰스 부코스키의 책이 온 건, 나의 눈을 반짝이게 했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중에 있는 산문시 「골칫덩이」에서는 '니나'란 여자와 위스키병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인 이야기가 그려진다. 『글쓰기에 대하여』에서는 다음과 같은 고백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답장이 늦어서 미안하오. 하지만 여자랑 헤어지는 과정 중이라 내 창자가 다 밖으로 나와 대롱거리고, 뭐 그랬소.” 모든 건 다 술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다. 누군가는 또 구스미 마사유키의 발랄한 책 『낮의 목욕탕과 술』을 보냈다. 낮술 얘기지만 동시에 사우나 얘기이며 음식에 관한 얘기다. 마사유키의 예찬처럼, 술은 낮술이 최고인 건 맞다. 그러니 책보다는 술을 보내는 게 맞지 않겠는가. 거절하지 않겠다. 
 
내 주변에는 풍각쟁이 정태호란 인간이 있다. 알코홀릭이다. 우리끼리 말로는 '알쭝(알코올중독자)'이다. 그 역시 나처럼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인간이다. 그는 나와 <이국정원>이라는 라이브 더빙 뮤지컬(이건 늘 느끼는 것인데 적당한 말이 없다. 저게 가장 맞는 말이다. 오디오가 망실된 1957년 필름을 틀어 놓고 스크린 밑 무대에서 뮤지컬 배우들이 대사를 대신 하고 노래를 부르고 하기 때문이다)을 같이 했는데 거기 밴드 마스터였다. 그는 풍각쟁이가 맞다. 메인 악기가 아코디언이기 때문이다. 피아노와 드럼 기타도 친다. 이런 식으로 각종 악기를 다 잘 다루면 대체로 유명 뮤지션이 되기보다 거리에 나가 '약장사'처럼 되기가 십상이다. 본인도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즐긴다. 정태호는 잘사는 아버지 집에서 태어나서 비교적 유명 대학의 장래가 촉망되는 학과를 다녔지만(고려대 경영학과) 전공과 상관없이 연주자가 돼 지금도 전국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세션맨으로 활동한다. 그의 가장 큰 돈벌이는 최백호 무대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가 이러는 건 순전히 술을 마시고 싶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악사의 처방전』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애주 성향에 관한 책을 냈다. 이 모든 걸 들으면 이놈의 나이가 60쯤 되겠거니 하지만 대학 학번으로 98학번이다. 40 중반도 안 됐다. 아버지가 돈이 있던 집안이었던 만큼 좋아하는 술은 주로 위스키다. 아드벡 같은 아일라 계통을 좋아한다. <이국정원>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와 술을 마시면 나쁘지 않은데 위스키파인 그도 노포 주점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포에서조차 그는 늘 발렌타인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의 샘플을 품 안에서 꺼내 그래도 위스키 먼저 한 잔, 하자며 끼득댄다. 정태호에 대해서 한마디만 더 하면 그는 『악사의 처방법』에서 음주 십계명을 쓰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날 많이 마셔서… 따위의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술 마시러 나올 때는 잔뜩 기대하고 나오는 법이고 그런 자신 앞에서 전날의 음주를 핑계 대는 것은 그야말로 김을 새게 해도 한참을 새게 만드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친다. 당당하게. '아니, 어제 많이 안 마신 놈 있어?' 
 
이전 글에서 뉴욕 올버니까지 갔다 왔으니 잠깐 다시 망원동으로 돌아갈까 한다. 어린 시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인민군 출신이고 아마도 전향한 인물일 것이다. 아버지가 남한 땅에서 어떻게 정착했는지, 특히 어떻게 그 같은 사상범이 국민학교 선생을 할 수 있었는지(그는 개성에서부터 교사이긴 했다)는 미스터리다. 아버지가 돈을 번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당시 국민학교 애들을 상대로 하는 '일타 강사'로 유명하셨던 모양이다. 학교 일 외에 가정교사로 돈을 번 그는 그걸 모아 사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른바 '집 장사'다. 집을 지어서 팔고, 그 남은 돈으로 또 집을 지어서 팔고 하는 식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제일 많이 지었던 때가 한꺼번에 세 채를 나란히 지었을 때였고 그게 바로 망원동이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내 손을 잡고(때로는 안고) 집 짓는 공사 현장에 왔는데 인부 중 '노가다 십장'에게 내가 다치지 않게 잘 돌보라고 하시곤 했던 게 기억난다. 인부들에게는 새참이 나왔는데 아줌마가 머리에 광주리 한가득 인절미, 동그랑땡, 무엇보다 주전자 막걸리를 가져왔다. 십장 아저씨는 그 거친 손으로 인절미를 잘라 줬고, 막걸리를 아버지 몰래, 한 모금씩 주곤 했다. 그 순박한 늙은 노동자는 다른 일꾼들에게 호되게 굴고 가끔 아버지에게 '곤조'를 부리곤 했지만 내 앞에서는 늘 눈 녹듯 잘 대해줬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배운 술이 그 막걸리였다. 내 기억 저 밑에 또 더 밑에, 그래서 맨 끝 밑바닥에 놓여 있는 어릴 적 그 기억은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선명해진다. 이거 한 모금 마셔봐. 맛있어? 어뗘? 허허허, 하던 그 늙은 막노동꾼은 어떻게 죽었을까. 망원동 일랑비어하우스에서 8년 전 쿠바를 갔던 멤버들과 약속을 한 이유는 거기가 그 중 한 젊은이가 낸 술집이어서 한번은 팔아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망원동에 대한 나의 기억, 그 노가다 십장 아저씨에 대한 기억이 더 컸기 때문이다. 
 
찰스 부코스키, 구스미 마사유키가 비오는 날 망원동에서 소맥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이미지=제미나이 생성)
 
일랑비어하우스에는 수제 맥주가 제법 많다. 맥주에 진심인 나 같은 사람에게 '헤이지'나 '페일블루닷' 같은 IPA는 다소 흔한 것이었다. 그날은 이것저것 다 마셔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풀베게' 같은 밀맥주는 나와 맞지 않는다. '홉스유나이티드'는 입맛엔 맞으나 도수가 5도라 다소 약하고 '프로젝트 해피: 바니'가 그나마 7도로 내 수준에 맞는 맥주였다. 일랑비어하우스는 다찌(立ち) 스타일의 술집이다. 다찌는 오사카에서 온 양식인데 오픈바에 죽 서서 간단하게 한잔 마시는 'ㄷ' 자식 구조의 술집에서 유래했다. 대체로 혼술을 하기에 좋고 많아야 세 명이 적당하다. 우리는 그날 다섯 명이었고 당연히 대화는 옆자리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당연히 2차를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한국 사람은 아무리 좋은 술을 마셔도 소맥은 꼭 해야 하는데 그날은 그 옆의 돼지껍데깃집으로 갔다. 술이 있어서 좋았고 쿠바 얘기를 나눠서 좋았다. 무엇보다 동그랗게 모여 앉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도 우리가 만나고 있다는 데에 신기해했다. 나는 무엇보다 거기가 망원동이어서 좋았다. 
 
그날은 그다지 취하지 않았다. 취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 한 명과 마실 때 그러는 것이다. 그날 내 옆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연처럼 술집 밖에서는 비가 내렸다. 술을 마실 때 비가 오면 좋은 건지 비가 올 때 술을 마시는 게 좋은 건지, 그게 그거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술이 세상을 분노케 하기보다는 아름답게 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술 마실 핑계는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많은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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