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알코올이 두뇌를 파괴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내 뇌는 이미 두 번 정도 파괴가 돼봤고(뇌출혈 두 번) 이미 여기저기 딱지가 앉아 있을 터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술을 마실 수 있는 건 이 두뇌라는 게 전적으로 파괴되기 전까지는 그 기능을 열심히 수행하는 놈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사람은 담배를 끊거나 혹은 거의 끊을 수 있지만 절대 못 끊는 것이 술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기 직전에도 아마 시원한 생맥주 한잔 달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생맥주는 뭐니 뭐니 해도 일본 생맥주, 일명 나마비루가 최고일 것이다. 일본의 맥주는 그것이 아사히든, 기린이든, 아니면 삿포로든 심지어 에비수가 됐든 거기서 거기의 라거 맥주인데 거리에서 파는 생맥주는 무엇이 되든 맛이 좋다. 아사히나 삿포로가 요즘 '生' 자를 붙인 캔맥주를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마트에서 정 먹을 게 없으면 삿포로生을 집는다. 자, 자, 기억들 해두라구. 내가 죽어갈 때 마지막 문병을 올 생각이 있다면(주변에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알겠지? 삿포로生이야, 아사히生이나 기린生은 아닌 거야.
일랑비어하우스에는 탭이 8개가 있다. 적지만 알차다. 맨 위 클라우드 먹지 말라. 맨 아래 프로젝트 해피 바니가 맛있다. (사진=필자 제공)
얼마 전(정확하게는 2025년 8월29일 오후 5시)에 망원동 일랑비어하우스에 가서 술을 마셨다. 여기는 수제 맥주 탭이 있고 젊은 친구 나예찬이 주인이다. 홍대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왔고 현재 33살이다. '윤석열 나이'로는 31살이라고 했다. 술집 브랜딩 디자인을 직접 했다. 일랑비어하우스는 신용보증기금 8000만원 대출을 얻어서 냈다고 했다. 나예찬은 8년 전 나와 쿠바를 같이 갔다 왔다. 그때 제일 어린 친구였다. 8년 전 쿠바행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갔었는데 영화감독도 있었고 강허달림 같은 가수도 있었다. 사진작가도 있었고 유전생명공학과 교수도 있었으며 영화 프로듀서나 키이스트 같은 유명 드라마 프로덕션 대표 박성혜도 있었다. 한두 명을 빼면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주 스노비시(snobbish)한 방송작가가 한 명 있어서 분위기를 종종 망치긴 했지만, 어차피 내 인생에서 버리고 지울 인간이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예찬은 우리가 산타클라라의 게바라 동상을 보러 갔을 때도, 바라데로의 옥빛(이것도 적당한 표현이 없다. 에메랄드빛? 여기 바다 색깔은 표현할 말이 없다) 해변에서도 늘 막내로서 수발을 들었다. 쿠바는 맥주가 그냥 그렇다. 더운 곳에서의 맥주는 그냥 시원한 맛으로 넘기는 것이다. 쿠바 맥주는 두 가지다. 이건 우리가 OB냐 하이트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쿠바 맥주는 '크리스탈'과 '부카네로'다. 개인적으로는 부카네로가 차라리 낫다. 차라리, 라고 얘기하는 건 둘 다 '개똥맛'이기 때문이다. 쿠바에서는 다이키리를 먹는 게 낫다. 다이키리는 헤밍웨이가 아바나 시내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 1층 바에서 앉은 자리에서 다섯 잔을 마시곤 했다지만 코리안 가이라면 열댓 잔까지도 가능하며 내가 실제로 거의 그렇게 많이 마시고 대취해본 적이 있는데 술기운을 못 이겨 더 못 마신 것이 아니고 너무 느끼해서였다. 쿠바의 술은 모두 럼 베이스다. 럼의 주된 원료는 사탕수수다. 다이키리는 럼과 설탕, 갈아낸 얼음으로 칵테일을 만든 것이다. 달고 쓰며 여기에 라임을 얹기 때문에 향이 있다. 다이키리를 굳이 영어식 발음으로 대쿼리 대쿼리 하는 숭미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구의 회전도 영어 발음의 굴림으로 돈다고 생각한다. 우웩이다. 다이키리는 다섯 잔 언더로는 좋은 술이다. 많이 마실 술은 아니다. 중간중간 쿠바 리브레를 마시는 것도 좋다. 쿠바 리브레는 일종의 럼콕이다. 샷을 하나 추가해 마시면 금방 취한다. 가성비로는 쿠바 리브레가 더 낫다. 다이키리든 쿠바 리브레든 미화 4~5달러 선이다. 과거의 나 같은 술꾼들은 차라리 하바나클럽을 온더락으로 마시는 편이었다. 하바나클럽은 3년산이 있고 7년산이 있고 15년산이 있다.
쿠바 아바나의 한 술집. 테이블에 놓여 있는 잔이 다이키리, 그리고 모히토. (사진=필자 제공)
역시 10년 전쯤 나와 함께 쿠바를 같이 갔고(나는 그동안 네 번을 갔다. 각각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산티아고데쿠바까지 가서 피델 카스트로 묘역을 참배하고 왔던(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는지 기억에 혼선이 있다) 전남대 의대 '칼잡이' 박영규 외과 전문의는 쿠바 여행 내내 나와 함께 하바나클럽 7년산을 들이켰다. 외과의 치고 내가 아는 사람 중 술을 못 마시는 이는 미국 뉴욕주 주도인 올버니에서 개업의로 살다가 성공해서 지금은 시카고에서 여유 있게 살아간다는 (집에 룸이 한 스무 개 있다는) 초등학교(서교), 중학교(광성), 대학교(고려대) 동창 J뿐이다. 예상컨대 그는 리퍼블리컨일 것이고 트럼프를 뽑았을 가능성이 큰데 그건 그가 엄청나게 독실하다 못해 보수적인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장인이 목사다. 그는 TK 집안 장남이었다. 상상할 수 있겠지? 선친은 내가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한다고 나를 당신의 아들과 나란히 앉혀놓고서는 서로 친구의 연을 끊으라고 했던 인물이다. 나는 그때 막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있었는데 친구 아버지는 마치 토벌대장 염상구처럼 보였다. J는 지금의 와이프와 살기 위해 아버지를 피해 미국으로 '야반도주'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순애보 중 최고였다. 그는 한국에서 이호왕 박사의 수제자였고 의사로서, 생물학자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지만 미국에서 인턴부터 다시 시작했고 한 노 의사의 눈에 들어 그가 운영하던 병원을 물려받았다. 일종의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인물이다. 그와 나는 현재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는다. 인생과 세계관이 달라졌다. 그가 의대 4학년일 때 나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피해 지낼 요량으로(NL과 PD의 싸움이 극에 달했었다) 그의 본과 기숙사에서 노닥거렸다. 그 기숙사 안에서 당연히, 혼술도 했다. 다른 의대생들은 J의 친구라는 이유로 모르는 척했다. 나의 알코올 개인사에서 그때가 나름대로 가장 평화로운 황금기였다. 그와 멀어진 이유는 순전히 술 때문이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쿠바의 또 다른 술집. (사진=필자 제공)
그나저나 전남대 의사 박영규는 이젠 칼을 잘 잡지 않는다. 약간의 수전증이 있다. 수술을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신기한 것은 칼만 잡으면 떨리던 손이 정갈하게 요래요래 반듯해진다. 그래도 그는 상당 시간을 집도의에서 강의 교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한때 위암 수술의 일인자였다. 박영규 교수의 뇌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렇게 하바나클럽부터 광주 소주 무등산(지금은 잎새주)을 마셔댔는데도 여전히 스마트한 늙은이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키가 180이 넘고, 몸짱이다. 60대 중반이 채 안 된 나이다. 손을 떤 사람 중엔 역사적으로 위인이 많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도 그랬다. 오죽했으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고 했을까. 카파도 많이 마셨을 것이다. 그 전장의 참혹함을 보면서 어떻게 들이키지 않을 수 있었을까. 믿거나 말거나다.
일랑비어하우스 IPA 맥주. (사진=필자 제공)
일랑비어하우스 얘기를 하다가 쿠바까지 갔다 왔다. 이 글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과 정신을 상하게 한다는 말을 나는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다. 술을 먹는 데 있어 특별한 기교는 없다. 술은 양이나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속도의 문제다. 속도를 느리게, 한 번에 털어 넣지 말고 잘라서 천천히 마시면 단 한 잔이라도 술의 맛에 취할 수 있다. 그러면 양도 적어지게 된다. 그러니 원 샷 습관만 버리면 된다. 오래 그리고 편하고 건강하게 술을 옆에 둘 수 있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 친구나 여자, 우정과 사랑은 한계에 봉착한다. 다 유한하다. 그 유한성을 그나마 연장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술이다. 술과의 소통. 혼술의 외로움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이 보인다,는 얘기가 있다. 진짜 믿거나 말거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