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종호기자] 황석영이 오랜만에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을 펴냈다. 배경은 80년대 난지도다.
▲ <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꽃섬'으로 불리는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에서 주인공 '딱부리'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딱부리'가 도깨비불을 따라가다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예전 애니메이션이 하나 생각난다.
2002년도 국내에서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의 치히로와 딱부리가 겹쳐 떠올랐다. 자본주의를 은근히 비판하는 작품 설정도 그렇지만 영화에서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얼굴없는 귀신 '가오나시'처럼 쓰레기 매립지가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조건 꾸역꾸역 먹고 뱉어내는 '가오나시'는 난지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황석영이 밝힌 것처럼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영화의 주인공 치히로는 자본을 상징하는 '유바바'의 마귀할멈으로부터 '千尋(치히로)'라는 이름을 빼앗겨 '센(千)'으로 전락한다. 이 순간 자신을 보호하거나 대변할 장치하나 없는 자본이라는 기계의 부속품이 된다.
더구나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는 저 멀리 80년대 낯선 곳이 아니라 바로 내가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아닌가. 또 내 마음속 깊이 "돈"에 치우쳐 '가오나시' 마냥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는"이라고 쏘아붙이는 안치환의 노랫말처럼이나 이 소설을 보면서 내 얼굴이 뜨거워진 까닭은 결코 낯선 곳이 아니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물건과 먼지와 연기와 썩는 냄새와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228쪽)
다시 황석영의 말을 빌려본다. "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오고부터라는 시골 노인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계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한 과정이었다. 나는 이들 우리 속의 정령을 불러내어 그이들의 마음으로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
"지금 내가 위치한 곳이 쓰레기 매립지 마냥 자본에 얽매여 있지는 않은가. 나는 치히로인가? 센인가"
이런 질문들로 부끄러움과 긴장감이 들면서도 황석영의 말처럼 타버린 잿더미 위에 풀꽃을 피울 사람. 정령에게 말을 걸어볼 사람 역시 나와 너 우리 아니겠는가.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될 때 바로 그곳이 쓰레기 매립지 마냥 악취가 풍기는 곳으로 전락하겠지만 이를 막아낼 수 있는 치히로가 됐음 하는 마음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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