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늦어지는데 자사주 소각도 후퇴?
공약 믿고 뛰어든 투자자들 ‘초조’…법사위장 자리가 먼저
검찰개혁안 등 민감 법안 다수…여야 대치시 순서 밀릴 가능성도
자사주 ‘원칙적’ 소각에서 실질적 제재로
2025-06-20 06:00:00 2025-06-20 06:00:00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국내 증시 부활을 이끈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개혁이 늦어지면서 투자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전일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자사주 소각 공약도 기존 안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상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논의, 심사해야 할 국회 법사위원회는 위원장 자리를 두고 여야 공방 중인 탓에 이를 지켜보는 투자자들의 초조함만 커지고 있습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시는 코스피 3000 돌파를 코앞에 두고 약세를 나타냈습니다. 지난 17일 장중 2998을 찍으며 당장에라도 3000선을 넘어설 것 같던 증시가 이틀째 눈치 보기를 이어갔습니다. 
 
이같은 행보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에 미국이 참전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국제 정세의 긴장감이 높아진 영향이 크지만,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됐던 각종 자본시장 개혁 방안들이 일단 멈춰 선 것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발의된 상법 개정안이 제자리입니다. 
 
개혁안, 발의는 됐는데…
 
현재 국회 법사위에는 2건의 상법 개정안이 올라 있습니다. 지난 5일 이정문 의원 등 25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첫 번째 개정안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총주주의 이익을 명시하고 전자주주총회 방식을 도입하자는 법안으로 익히 알려진 내용입니다.
 
10일 신장식 의원 등 조국혁신당 의원들 위주로 제출한 상법 개정안도 이와 흡사한데요. 한 가지, 이사의 보수에 관한 조항이 더해졌습니다. 부당한 평가에 기초해 산정된 이사 보수를 회사가 환수하는 의무를 명시하고, 대규모 상장사의 경우 이사회 내 보수위원회를 설치, 임원 보수체계를 심의 의결하자는 내용입니다. 두 법안 모두 이사들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입니다. 
 
자본시장 개혁 관련 법안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정무위원회엔 자본시장법 개정안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낸 개정안은 상장회사 합병 시 주가로 산정가액을 산출해 일반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정가액 산정 원칙을 명문화하고 순자산가치를 하한선으로 설정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자본시장 신뢰를 회복하자는 내용입니다. 
 
이밖에도 경영권 취득 목적이 아닌 일반 투자자를 위해 대량보유보고제에 예외사항을 두자는 법안,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에서 상장기업을 제외하자는 법안 등 주식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법안들이 대선 후 발의돼 계류되어 있습니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법사위원장 두고 공방…일단 열려야 출발
 
문제는 속도감 있게 추진되던 법 개정이 일단 멈춘 탓에 투자자들이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식시장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쏟아진 각종 개혁안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달아오른 상태여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면 그만큼 반작용도 클 것으로 우려됩니다. 다만 투자자들의 기대가 너무 앞서갔을 뿐 법 개정은 시간을 두고 진행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현재 국회에선 각종 법안들의 심의를 주도할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여야가 공방 중입니다. 법사위는 민주당 10명, 국민의힘 7명, 비교섭단체인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등 총 18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위원장은 지난 회기까지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맡았으나, 정 의원이 최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며 공석이 됐습니다. 이 자리를 놓고 여야가 대치 중입니다. 민주당은 절대 위원장을 내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도 관례를 들어 야당 몫을 주장합니다. 여야가 합의하든 밀어붙이기든 자리의 주인이 확정돼야 법사위가 열릴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도 현재 법사위에는 민감한 법안들이 쌓여 있어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검찰청법 폐지법률안, 공소청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운영에 관한 개정안, 국가수사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 등 윤석열 정부의 내란을 단죄하고 검찰을 개혁하기 위한 법안들이 계류돼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상법 개정보다 이를 우선해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법사위 구성상 여당 단독으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본회의로 넘길 수는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법사위가 열려야 멈춘 시계가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자사주 소각 공약 후퇴…꼼수는 차단
 
투자자들이 불안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사주 소각 공약 때문인데요. 하루 전 국정기획위원회는 ‘합리적 기업지배구조 주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상장사 자사주 소각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위원회는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 근거를 마련하되 이미 보유 중인 자사주는 합리적 규제란 명목으로 소각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열어주었습니다. 
 
투자자들은 정부가 선거에서 내걸었던 공약에서 크게 후퇴했다며 비판했습니다. 일부 투자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 후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SK그룹의 지주사인 SK의 경우 자사주 비중이 24.8%에 달해 자사주 소각 공약이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회사의 자기주식의 취득은 상여금 지급, 주식 보상 등을 제외하고는 소각을 목적으로 한 경우에만 허용하고 △일정기간 이내에 모두 소각하도록 원칙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기보유 자사주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충분히 부여하되, 자사주 처분 시 신주발행 절차를 준용해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한편 △합병 분할 시 신주 배정을 포함해 자사주 권리를 정지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했습니다.
 
투자자들은 현재 기업들이 보유 중인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지 않는 데 크게 실망했으나, 전문가들은 바뀐 내용도 기존 자사주로 인해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최대주주, 경영진이 자사주를 이용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꼼수는 막힐 전망입니다.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우호세력에게 매각하거나 파킹하는 거래를 하는데 이 과정을 금감원이 심사할 경우 차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것도 막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엇보다 감독기관이 지켜보는 이상 섣불리 손을 대기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자사주를 새로 사는 기업들은 임직원에 대한 보상 또는 소각을 전제로 매입해야 하고, 이미 자사주를 갖고 있는 기업들은 전량 소각해 지배력이 흔들리는 사태를 피할 수는 있지만 경영권 방어에는 쓸 수 없는 만큼 장기적으로 소각 플랜을 마련하거나 주식배당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수십 년 안고 있던 바위를 치우는 일인데 하루이틀 새 될 수는 없다”면서 “투자자들이 기대가 큰 만큼 일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불안하겠지만 정부도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으니까 조금 느긋하게 기다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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