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에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빨간색 'TRUMP 2028' 모자를 놓은 사진을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공개했다. 오는 2028년은 미국의 차기 대선 선거가 있는 해다. 미국 헌법상 대통령 3선은 불가능하지만 그는 의지를 감추지 않는다. 지난 3월 <NBC> 방송 인터뷰에서는 3선 도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농담이 아니다"라며 "많은 사람이 내가 3선을 하길 원한다"고 했고, 아시아 순방에 나선 지난달 말 27일(현지시간) 도쿄행 전용기 안에서도 세 번째 대통령 도전 관련 질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I would love to do it)"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1기 시절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수석고문을 지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리더, 스티브 배넌도 지난달에 "트럼프가 2028년에 대통령이 돼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할 것"이라면서 "사람들은 그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3선 불가 규정에 대해서도 그는 "다양한 대안이 있다. 적절한 시기에 그 계획이 뭔지 밝힐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미국 언론들 '레임덕 기사' 봇물
하지만 현실은, 대통령 3선을 바라보는 트럼프 쪽의 소망과는 크게 다르다. 곳곳에서 레임덕 소리가 난무한다. 취임한 지 이제 겨우 10달이 지났는데 말이다.
지난 9월22~2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시에나대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47%였다. 2기 취임 후 최저치였고 역대 대통령들의 같은 시기 조사와 비교해도 눈에 띄게 낮았다. 이어 CNN-여론조사업체 SSRS의 27~30일 조사에서도 37%에 그쳤다. 같은 기관의 지난 7월 조사(42%)에 비해 5%포인트 하락한 수치였다. 반면 부정 평가는 63%로 나타났는데, 이는 2021년 1월 퇴임 당시 기록한 역대 최고치 62%보다도 1%포인트 높다.
결국 4일 뉴욕시장과 버지니아주·뉴저지주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은 대패했다. 모두 10%포인트 넘는 차이가 났다. 뉴욕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에게 가려졌지만 공화당은 미시시피주 상원의원과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선거, 펜실베이니아주 대법관 선거 등 이날 함께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완패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패배한 뒤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민주당은 '미니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내년 11월 2026년 중간선거를 위한 중요한 동력을 확보한 셈이다.
4일 선거가 미국 분위기를 바꿨고, 역시 언론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선거 이틀 뒤인 6일 "Donald Trump enters his lame duck era(트럼프 레임덕 시대 돌입)"라고 썼다. '레임덕'을 제목으로 뽑은 이 기사는 "공화당의 충격적인 선거 패배 이후, 당내 인사들이 트럼프와 일정한 거리를 두며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기사는 트럼프가 선거 패배 직후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백악관에 불러 "규칙을 바꿔서라도 의회에서 민주당을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압박했으나, 이들은 의회로 돌아가자마자 트럼프의 요구를 무시해버렸다고 전해 화제가 됐다. 재선 걱정을 하지 않는 은퇴 예정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중 한 의원은 트럼프가 "양당을 아우르는 협력 능력이 전혀 없다"면서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민주당 의원들과 논리적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Is this the beginning of the end of the Trump era?(트럼프 시대 종말의 시작인가?-LA타임스)', 'Is Trump a lame duck president?(트럼프는 레임덕 대통령인가?-더 위크)', 'America Begins Clapping Back at Donald Trump(미국이 트럼프에게 반격 시작-뉴요커)', 'Donald Trump Is a Lamer Duck Than Ever(트럼프,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잃은 레임덕 신세-애틀랜틱)', 'Has Trump passed his peak?(트럼프는 전성기를 지났는가-파이낸셜 타임스)' 등도 비슷한 내용들로 트럼프가 임기 초에 이미 레임덕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심층 기사로 유명한 월간지 <애틀랜틱>은 "이번 선거 참패가 트럼프의 정치적 '독성(toxicity)'을 입증했으며, 유권자들이 혼란(Chaos)과 MAGA 운동의 극단성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하면서 트럼프의 지지도 하락이 매우 근본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반면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개막전'은 확실히 끝났다"면서도 "그가 여전히 공화당 내부에서 압도적인 충성심을 가진 확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잠재적 경쟁자들이 감히 도전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 6월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열린 '노 킹스(왕은 없다)' 시위 장면. (사진=뉴시스)
눈앞의 최대 위기, 관세정책 대법원 재판…9명 중 '최소 6명'이 비판적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공화당 차기 대선후보들에 대한 하마평도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매체들은 '대통령 후보-JD 밴스, 부통령 후보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 시나리오 등을 거론하고 있는데, 현직 대통령 임기 1년 차 상황에서는 이례적이다.
이런 트럼프에게 눈앞의 최대 위기는 대법원의 관세정책 재판 문제다. 지난 4월부터 대표 정책으로 밀어온 전 세계 대상 관세정책이 최대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트럼프는 "우리가 패배한다면 미국은 거의 제3세계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위협하지만, 지난 5일부터 심리를 시작한 대법원 상황은 심상치 않다. '보수 6-진보 3' 구도이지만, 최소 6명이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비판적이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대통령령이 외국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관세는 대통령 권한이 아니라 의회 권한"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역대 최저 지지율은 34%였다. 2021년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직후에 갤럽이 조사한 수치로, 1940년대 조사 시작 이래 역대 대통령 중 두 번째로 낮은 성적이었다.
<AP통신>이 지난 6~10일까지 시카고대학 여론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조사한 뒤 12일 공개한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36%로 나타났다. 조사기관이 다르기는 하지만 자신의 역대 최저 지지율에 2%포인트 차이로 근접한 것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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