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사이 정치 뉴스를 보면, 정책을 말하는 사람보다 대결과 분노를 키우는 사람이 더 주목받았다. 메시지 비판보다는 메신저 공격에 치중해 누가 더 나쁜지가 정치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정치의 본래 목적은 분노의 대결이 아니라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정치의 역할은 여러 이익집단 간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인데 이러한 정치의 역할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처럼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정치에 의한 이해 조정은 제로섬(zero-sum)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강요하기에 대결과 분열만 낳게 된다. 또한 이해 조정의 정치 프레임에서는 장기적이고 공동체의 이익이 걸린 문제는 뒤로 미루거나 상징적 조치에 그치게 만든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는 정치의 역할을 집단 간 이해 조정에서 ‘문제 해결을 통한 이해 조정’의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정치를 공동체 문제 해결의 장으로 바꾸면 모든 집단들에게 이익이 되는 창의적 정책들을 더 많이 개발할 수 있다. 필자는 이전의 시론(양면적 사고의 실용 정치를 기대한다)에서 '실용 정치'는 유연성과 양면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실용 정치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은 비단 정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 조직은 그들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기업은 스스로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면서 경쟁력을 높여왔다. 기업의 문제 해결 방법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를 위해 기업의 문제 해결 방법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기업의 문제 해결은 3단계로 진행된다. 문제 인식, 문제 정의, 해법(아이디어) 개발의 단계이다. 문제의 종류는 단순한 문제부터 복잡한 문제가 있는데 이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진다. 우선 단순한 문제들은 문제 인식이 곧 문제 해결로 이어진다. 여기서 핵심은 ‘문제는 누가 주고 누가 인식하는가’다. 기업의 경우에 고객이 문제를 주지만 정치 조직(정부와 정당)에서 문제는 주권자인 국민이 주는 것이다. 문제의 인식은 누가하는 것인가? 조직에서 의사결정자 혹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기업의 고객센터에서는 고객의 불만들이 접수되고, 이 중 빈도가 높은 것은 홈페이지에 그날그날 ‘고객의 목소리’로 소개되어 전사적으로 공유되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인식된다. 정부의 경우에는 국민의 민원 형태로 문제가 주어진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민원은 다른 이해관계와 상충하지 않는 한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인식되는 즉시 해결될 수 있지만, 인식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 정부 조직은 여러 부문으로 나뉘어 있고 계층화되어 있어 민원이 권한을 가진 의사결정권자에게 좀처럼 도달하지 않는다. 일선 공무원은 이런 민원을 해결할 동기가 없다. 왜냐하면 조직에서의 성공은 국민이 아닌 자기 상관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원 해결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민원들은 자기 소관 업무가 아니며 권한 밖이라는 이유로 무시된다.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한 기업의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은 한국 정치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데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제429회 정기국회를 앞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사진=뉴시스)
정치지도자는 민원이 이런 이유로 무시되지 않도록 일선 조직을 긴장시키고 활성화해야 한다. 이전의 왕조사회에서도 관리들이 긴장하도록 왕이 직접 민원을 챙겼다. 태종은 신문고를 설치하고 정조는 격쟁(擊錚) 제도를 만들어 국민과 직접 소통했다. 격쟁이란 일반 백성이 궁궐 안으로 들어가거나, 임금이 행차하는 길가에서 징과 꽹과리를 쳐서 직접 민원을 듣는 제도다. 최고지도자는 자신이 국민의 민원을 일일이 경청하고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정부 조직에 꾸준히 보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을 순회하면서 국민소통회의를 통해 공개적으로 민원을 듣고 있는데, 이는 현대판 신문고나 격쟁이라 볼 수 있다.
중간 정도의 복잡성을 갖는 문제들은 질문을 통해 문제를 잘 정의한 후에 전문가들이나 여러 부서 담당자들의 아이디어 회의(브레인스토밍)에서 해법을 찾는다. 이때 문제를 너무 좁게 혹은 넓게 정의하면 최적의 해법을 찾기 힘들다. 민원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혜택)와 더불어 왜 그런 혜택을 원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왜’라는 질문으로 더 넓은 혜택에서 시작해서 더 다양한 해법들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문제를 더 잘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의사를 늘려달라는 민원인에게 “왜 의사를 늘려달라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진료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하자. 이 경우에 “진료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찾으면 더 나은 해법들을 찾을 수 있다. 마케팅에서 “소비자는 4분의 1인치 드릴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4분의 1인치 구멍을 원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더 넓은 관점에서 해법을 찾으라는 의미다. 해법을 찾는 아이디어 회의에서는 진료 대기 시간을 줄이는 여러 해법들을 찾고, 필요하면 현장 관찰과 소규모 실험(정책에선 시범사업)으로 해결책이 유효한지 검증한다.
장기적이고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게 얽힌 큰 문제는 시스템적 사고로 해법을 구한다. 이는 우선 큰 문제를 여러 작은 문제들로 나누는 것이다. 큰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나누는 것 자체가 문제 정의다. 작은 문제들로 나누고 그 작은 문제의 해법들을 모아서 큰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철학자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제안한 방법이다. 예를 들면 저출산 문제도 단순히 출산장려금 지원과 같은 일차원적 해결책만 추진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지난 16년간 200조 이상 투입했지만 OECD 최저의 출산율이 지속되었다. 저출산 문제를 육아 지원, 주거비 해결, 일자리 안정, 장시간 노동 등과 같은 작은 문제들로 나누어 시스템적 사고로 접근했어야 했다. 그런데 시스템적 사고는 문제를 나누어 해법을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간다. 작은 문제들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작은 문제들의 해법들은 서로 상충하게 된다. 해법들 간에 이런 상충이 최소화하도록 사전에 해당 부서 간에 긴밀한 사전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다.
정치지도자가 여러 문제들이 얽힌 복잡한 문제를 시스템적 사고가 아닌 일차원적 해결책으로 대처하면 문제 해결에 실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 부활이라는 큰 문제를 여러 작은 문제들로 나누어 종합 대책으로 해결해야 했다. 관세만 올리면 미국으로 제조업이 유입되리라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으로, 실패할 것이 확실하다.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한데 정치지도자가 일차원적 해결책을 밀어붙여 재앙으로 끝난 예는 너무나 많다. 미국의 20년대 금주법, 30년대 스무트-홀리 관세법, 70년대 닉슨의 마약과 전쟁 등은 재앙적 해법의 대표적 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도 연방대법원의 위법성 판결과 무관하게 또 다른 재앙적 정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의료 개혁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단순한 해법으로 밀어붙여 의료 시스템에 재앙을 초래했다. 선동적 정치가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시원시원하게 말한다. 유권자들도 그런 후보에게 끌린다.
문제 해결 정치를 정착시키는 데는 유권자의 역할이 막중하다. 메시지보다 메신저 공격에 치중하거나 한방에 해결을 내세우는 정치가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고 보고 선거를 통해 반드시 걸러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싸우는 정치가 아닌 문제 해결을 통해 국민의 삶을 향상하는 정치이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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