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것이 왔을 뿐이다. 사고도, 사과도 한 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고 원인을 내부통제 미비로 돌리는 것은 비겁하고 전형적이다. ‘멸공’ 놀이가 취미인 오너 리스크를 구축(驅逐)할 수 없다. 왕관을 쓴 인플루언서에게 생계가 걸려 있는 노동자와 주주들이 처한 상황은 비극적이다.
이번 사태에 변호사로서 기괴했던 점은 ‘정용진이 정용진 했다’는 것이 아니다. 파장이 커지자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회장, 스타벅스커피 손ㅇㅇ 대표 전격 해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정용진 회장 격노, 스타벅스 대표 손ㅇㅇ 해임”이라는 기사가 포털을 도배했다. 당장 사고를 수습해야 할 대표이사를 꼬리 자르기식으로 해임해 버리는 방식의 위기관리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런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싹텄다. 상법상 주식회사에서 대표이사 해임은 원칙적으로 이사회의 권한이다. 정용진은 스타벅스코리아를 운영하는 SCK컴퍼니(주) 대주주인 이마트(주)의 대주주일 뿐, 스타벅스코리아의 인사에 관여할 법적 권한은 없다. 이사회는 개최했을까. 정용진은 대체 무슨 권한으로 스타벅스코리아의 대표를 해임할 수 있었을까. 재벌 그룹 오너의 ‘격노’가 ‘인사명령’이 되고, 이사회는 ‘서기(書記)’가 된다.
사과는 더욱 기괴했다. 정용진은 “신세계그룹 회장으로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여러분의 용서를 구합니다”라며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시기”라거나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사과를 빙자해 피해자와 소비자를 가르치려 들었다. 사과의 말은 하되, 반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세계그룹’이라는 것은 법인격이 없는 관념적인 집합체에 불과하다. 이사회도, 대표이사도, 주주총회도 없다. 억지로 법적 의미를 찾자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규율 대상으로서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인 ‘기업집단’에 가까운 개념이고, 독립적인 주체가 아니다. 언론에 따르면 2024년 3월8일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부회장을 신세계그룹의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신세계그룹의 승진인사는 누가 내는 것일까. 정용진은 상법상 이마트(주)의 이사도 아니고, SCK컴퍼니(주)의 이사도 아니다. 주식회사의 업무 집행의 권한과 책임은 이사회와 이사에게 귀속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사회가 장식에 불과한 것이 비단 신세계그룹만의 문제는 아니다. H그룹의 주요 5개 계열사를 전수조사했더니, 이사회 소속 사외이사들이 상정된 모든 안건에 대해 2024년, 2025년 2년 연속 찬성률 100%를 기록했다고 한다. 작금의 사외이사 제도는 무익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주주의 독단에 대한 방패막이로 그들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정당화하는 유해한 제도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2025년 7월22일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문화하고, 기존 사외이사 제도를 보완해 이사회에서 경영진과 지배주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된 이사가 주주 이익을 대변하고 감시·견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독립이사제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이 있었다. 실효성이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아무 회사의 이사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격노하는 신세계그룹의 회장은 회사와 주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고, 누구로부터 감시·견제를 받는 것일까. 법적으로 관여할 자격이 없는 회사의 대표이사를 마음대로 해임하고, 한편으로는 회사를 위해 사과하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권한과 책임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과에는 돈이 들지 않고, ‘회장’이라는 직함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나라 재벌 그룹의 거버넌스는 무법천지다.
천경득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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