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황정민이, 알려진 바로는, 술을 끊었다. 연예인들 가십이다. 황정민은 금주 덕인지 원래도 말랐던 몸이 더욱 ‘슬림’해졌다. 무엇보다 얼굴 피부의 변화가 놀랍다. 마치 브래드 피트가 안면거상 수술을 한 듯 황정민의 얼굴은 팽팽해졌다. 턱선도 당연히 날카로워졌다. 피부톤이 ‘코주부’ 붉은색에서 맑고 뽀얗게 확 달라졌다. 금주 2년째이지만 15일 개봉한 <호프>의 공개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졌다. 황정민의 건강에 무슨 적신호가 켜졌던 것일까.
배우 황정민이 술을 끊고 연기에 전념중이다. 그의 최신작 <호프>(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느 날부턴가 연기에 집중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대사를 외우는 게 점점 힘이 들었고 그게 술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대사를 전달하기가 영화는 그래도 그럭저럭 할 만하다 치자. 연극은 차원이 다른 얘기이다. 특히 셰익스피어 정극은 완전히 다른 얘기이다. 황정민은 2022년에 <리처드 3세>를, 2024년에는 <맥베스>를 연기했다. 그때가 아마 그가 금주를 결심한 결정적 순간이었을 것이다. 황정민은 워낙 영향력이 큰 배우라 금주 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그가 좋아했던 소주를 만드는 회사는 긴장해야 할 것이다. 소주 인구에 타격을 줄 것이다.
배우 정재영이 술을 끊은 지는 꽤 됐다. 적어도 5년은 넘었다. 정재영은 한때 두주불사 알코올 지지자였다. 그가 술을 끊은 것은 순전히 건강상의 이유이다. 그는 코로나 직전 일종의 희귀병에 걸렸는데 (정확한 병명은 밝히지 않았으나)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이다. 아마도 면역 문제가 발생한 듯싶었다. 의사의 명령으로 정재영은 그때 당장 술을 끊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술을 마시면 일시적이나마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몸의 이상한 증상을 극복해 냈다. 건강을 온전히 회복했다. 그래서 넷플릭스 드라마 <카터>(2022)에도 출연했고 이순신 영화 3부작의 3부 <노량: 죽음의 바다>(2023)에서 명의 장수 진린 역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김한민의 새로운 블록버스터 액션 사극 <칼: 고두막한의 검>에 출연 중이다. 정재영 특유의 강렬하고, 포효하는 듯한 연기를 유감없이 펼쳐 보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지금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영화계는 중요한 술친구를 잃었다. 그와 술을 마시면, 유쾌해서 좋았다. 하기야 그도 이제 50대 중반을 넘었다.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확정했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연기이다.
배우 정재영은 건강문제로 술을 끊고 회복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명의 장수로 나왔다.(사진=롯데컬처웍스)
배우 유준상은 처음부터 아예 술을 마시지 않았다. 2025년 ‘추도 섬 영화제’에 정지영 감독과 영화 <소년들> 상영으로 섬 주민과 만난 유준상은 1박 2일 일정에서 아침이면 어김없이 해변을 돌며 러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전날 도착해서는 주민들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춤 한판도 추(어주)고 저녁 야외무대에서는 섬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과 열심히 대화도 나눴다. 그는 매사 열심이고 진지하다. 그는 건실하고 미래지향적이다. 유준상은 알게 모르게 줄곧 단편영화를 찍어 왔다. 언젠가는 장편 데뷔를 하고 싶어 한다. 그의 단편 최근작은, 연극배우 박정자가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담은 <청명과 곡우 사이>다. 유준상은 끊임없이 뮤지컬을 한다. 그가 술을 먹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다. 술은 알고 보면 엄청난 시간을 소요하게 만든다. 뮤지컬 연습에, 영화 출연에, 연출까지 하다 보면(게다가 운동까지) 유준상에겐 정말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배우들에 비한다면 영화감독 중 금주파는 그리 많지 않다. 생각해 보면 감독이 술을 끊으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 영화감독은 일종의 정치인과 같다. 스태프들 한 명 한 명과 배우들 한 명 한 명을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 감독이 특정 배우, 곧 특정 배역에 지나치게 치중한다 싶으면 다른 배우들이 잘 따라오지 않는다. 작은 배역을 맡은 배우도 감독이 자기가 연기를 할 때만큼은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 당연한 일이다. 감독이 카메라 감독이나 조명감독, 음향감독과 수가 틀어지면 프로덕션 내내 분위기가 나빠진다. 제작자와 투자자들의 지나친 간섭도 막아야 한다. 때론 타협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걸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은 어쩌면 술이다. 상대를 달래고, 설득하고, 때론 으름장을 놓다가도 ‘자, 잘하자!’를 할 수 있게 하는 건 역시 술이다.
천만 관객 한국 영화의 기수이자 한편으로는 굴지의 제작자였던 강우석 감독은 촬영 내내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걸로 유명했다. 강우석 감독의 음주 방식은 속전속결이다. 그가 비교적 많은 양을 마시면서도 다음 날의 촬영을 전혀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마따나 ‘빨리 들어가서 8시 뉴스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촬영 일과를 끝내고 6시에 시작한 저녁 자리, 반주처럼 시작하는 술자리는 대체로 2시간 안에 끝이 난다. 강우석은 술을 빨리, 많이 마시지만(보통 소맥 8잔 정도?) 정해진 시간을 넘기지 않고, 들어가서 푹 자고, 새벽에 일어나 그날 촬영을 준비하는 식이다. 강우석은 어릴 때 암산왕이었고(천만 단위 수 10개나 20개를 더하거나 곱하는 것을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해내는, 신기한 영재이다) 머리가 스마트하며 자기 인생은 자기가 찾아 ‘먹는’ 영리한 사람이다. 술을 좋아하되, 그것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강우석은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의 흥행 실패 이후 지난 10년간 은둔하다시피 살아왔다. 그의 ‘계산’으로, 변화된 시대와 새로운 세대를 상대로 자신의 연출 방식은 손익이 맞지 않는다고 나왔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그도 요즘 새 작품(이번엔 드라마까지)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아마 강우석 감독은 은둔 중인 지금도 저녁때면 여전히 반주를 즐길 것이다. 그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마실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진정한 의미의 술꾼이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술과 관련한 구설수가 없었다. 본받을 일이다.
강우석 감독은 전설의 천만 관객 감독이라는 별칭 외에도 전설의 술꾼 소리도 듣는다. <고산자, 대동여지도> 촬영 때의 강우석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알코올 예찬은 어차피, 선택이다. 인생에는 무수한 길이 있다. 내가 술을 마실 것인가 끊을 것인가도 중요한 선택 중의 하나이다. 같은 테이블에서 밥만 먹든, 술도 같이 먹든 그것도 개인의 자유이다. 이제 억지로 술을 권하는 문화도 조폭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조차 드라마가 만든, 일종의 판타지일 수 있다. 요즘의 (기업형) 조폭들은 술을 강제하지 않는다. 물론 모르는 일이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술을 먹는다 해도 어떤 술을 마실 것인가 역시 자유이다. 소주를 먹든, 소맥을 먹든, 맥주만 마시든, 사케가 됐든, 하이볼이 됐든, 그것도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럴 때는 일본식이 좋은데, 자기 술은 각자 앞에 놓고 알아서 따라 먹는 문화이다. 한국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좋긴 해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다중 속의 혼술 방식’이 훨씬 편해진다. 그래야 술의 속도를 줄이고 스스로 술을 통제할 수 있으며 그제야 술을 ‘즐기며’ 마실 수가 있다.
엄청난 고물가의 시대이다. 중식당에서 요리 안주 두 개에 식사까지 셋이서 먹으면서 생맥주를 서너 잔씩 곁들인다 치자. 잘못하면 20만원 가까운 계산서를 손에 쥐게 된다. 생맥주를 시킬 때 가격대를 눈여겨 잘 봐야 한다. 국산 생맥주는 5000원~6000원 선이지만 아사히나 기린, 에비스, 하이네켄 등은 주점에 따라 8000원에서 만2000원까지도 받는다. 이런 데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와야 한다.
한국계 일본인 마츠다 아키히로도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TV – 사가 여행> 편에서 생맥주는 500엔에서 600엔 사이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불경기에, 생맥주에다 소주를 원샷 혹은 투 샷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는 술집도 늘고 있다. 이런 집이야말로 가성비가 좋은 데다 무엇보다 이런 잔을 두 시간에 걸쳐 두 잔쯤 마시면 적당한 취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자리가 길어지면 자칫 분열된 정치 얘기로 넘어간다. 노선이 다르면 말싸움으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소주 원샷) 생맥 두 잔에 두 시간이 딱 좋다. 다들 빨리 들어가서 9시 뉴스를 보는 게 낫다. 8시 뉴스까지는 무리다. 건강하게들 마시자는 얘기이다. 모두 다 고주망태의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삶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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