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악랄한 시장 박성배(황정민)는 자신이 살해를 지시해 죽은 과거의 충복 은충호 비서실장(김종수)의 장례식장에 와 뻔뻔하게 밥상 앞에 앉는다. 박 시장은 건너편에 앉아 있는 비리 경찰 도경(정우성)에게 느물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 육개장 말이야, 수원 광교 쪽에 있는 식당 한 군데에서 경기도 전체에 납품하는 거야. 맛이 아주 별미야. 내가 이거 먹으려고 문상 다닌다고 하면 믿겠니?" 그리고 후루룩 쩝쩝 육개장을 맛있게 먹는다. 도경은 소맥을 세게 한잔 말고 쭉 들이켠 후 맥주잔 바닥에 있던 빈 소주잔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한다.
김성수 감독이 10년 전인 2016년에 발표한 <아수라>에서 나오는 전율의 장면이다. (실제로 옛날 깡패 중에는 소주잔을 씹어 깨뜨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수라>는, 한동안 ‘어쭙잖은’ 기자들, ‘악의’가 있는 언론들이 극 중 박성배란 캐릭터는, 실제로 성남 시장을 지낸 이재명 현 대통령을 빗대어 묘사한 것이라며 부풀리고 왜곡해서 보도하곤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그러나 영화의 일부 내용은 이재명 전 시장이 아닌, 성남시를 실제로 비리 천국으로 만들었던 이대엽 전 시장 때의 얘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엽은 구속돼 징역 4년 형을 받았다) 정작 김성수 감독은 영화의 내용이야 다 허구의 스토리일 뿐이라며 일부 언론의 보도에 유감스러워했다. 그는 이후 <서울의 봄>으로 천만 관객 감독의 좌표를 찍었다.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등장하는 영화 <아수라>의 한 장면.(사진=사나이픽처스)
알코올 일지에 왜 뜬금없이 영화 <아수라> 얘기냐고들 하겠지만 장례식장에서 먹는 술 얘기를 하려다가 삼천포를 먼저 들른 셈이 됐다. 요즘의 장례식장은 과히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다. 다들 차를 갖고 오는 데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시절이 다 지나가기도 했다. 장례식장 분위기가 왁자하기란 요즘 웬만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술꾼들은 구석에서 조용히, 죄인처럼 홀짝이며 술을 마신다. ‘어허 여기서는 짠, 하면 안 된다니까. 각자 알아서들 마셔. 술도 가능하면 알아서 따라 마시고. 어허 안 된다니까. 아무리 호상이라 해도 그러는 거 아니라니깐.’ 등등의 대화가 오간다.
장례식장의 술은 거의 전부가 국산 맥주 캔, 그리고 소주이다. 간혹 생막걸리 캔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구로에 있는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이 그렇다. 막걸리란 술은 유통기한이 열흘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자칫 상하기가 쉽고 그래서 장례식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 전통주 업체가 생막걸리 캔 제품을 출시하면서 장례식장 주류에 변화가 생겼다. 조문객 중에는 신기해서라도 마셔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생막걸리 캔이 환영받는 이유는 조문객용 밥상에 차려지는 음식 가운데 막걸리용이 많기 때문이다. 모둠전 접시가 기본으로 나오는 데다 홍어회 무침도 막걸리용 음식이다.
영화 <아수라>처럼 조문객들에게는 대체로 육개장이 제공된다. 식단은 상주와 상조회사가 미리 합의해 정하게 되는데 육개장이냐 황태해장국이냐 배추된장국이냐 아니면 소고기뭇국이냐가 이때 결정된다. 상을 당하고 영안실과 장례식장을 정하고 등등 하는 경황의 와중에서도 상주와 그 가족들은 식단을 놓고 약간 의견 다툼을 벌이게 된다. ‘그래도 상갓집에서는 육개장이지’라는 주장이 늘 이기곤 한다. 사람들이 한두 잔이라도 소주를 마시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면 소고기뭇국보다는 육개장이 낫기 때문이다. 술과 음식은 배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장례식장에서는 소주와 맥주를 일회용 컵으로 마신다.(이미지=챗GPT)
상갓집에는 정식 술잔이 따로 없다. 다 종이컵이다. 유리컵이 없는 이유는 자칫 싸움이 벌어지면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을 좀 먹네’, ‘여기까지 왔으니 좀 먹고 가야겠네’하는 인간들은 종이 물잔과 종이 소주잔으로 소맥을 말아먹는다. 맥주량이 평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지기 때문에 소주는 종이 소주잔 밑에 깔리는 정도로만 따라서 섞는 게 낫다. 잘못 섞으면 ‘한 방에 훅’간다. 남의 초상집에서 술 취해서 비틀거리는 것만큼 보기 흉한 것은 없다. 상갓집 주사는 옛날 시절, 동네 각설이들의 몫이었다. 장례식장에서의 소주에는 훈제 돼지고기가 어울린다. 이 메뉴는 전국 모든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대체로 다 있다. 가장 맛있는 곳은 서울 강남 터미널 뒤 대학병원 장례식장이다. 일주일을 멀다 하고 부고장을 자주 받는 요즘이고 서울과 경기권 병원 장례식장을 마치 선거 운동하듯 샅샅이 뒤지다 보면 어디 육개장이 맛있고 어디의 돼지고기 반찬이 최고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된다. 그 기준은 나오는 돼지고기에 잡내는 없는가, 육개장이 과도하게 느끼한 것은 아닌가 등이다. 터미널 뒤 대학병원 장례식장이 그 두 가지 점에서 늘 최고점을 받는다.
올해 1월 초 타계한 고 안성기 배우의 장례식장 풍경은 진실로 우울했다. 상주 격으로 조문객을 맞는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의 얼굴은 시종일관 침통한 표정이었다. 원로인 임권택 감독은 자못 쓸쓸하고 씁쓸한 표정이었다. 자신보다 먼저 간 후배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초상집 분위기가 이래서 되겠어, 어디?!” 그가 성큼성큼 냉장고에서 맥주 캔 여러 개와 소주 두어 병을 가져왔다. 본인이 칙, 맥주를 따서 술을 따르고 소주를 섞어 마시기 시작했다. 이때에서야 비로소 테이블마다 술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테이블에선가 집안 장례식 얘기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축제>(1996) 얘기가 나왔다. 이 자리에 성기 형이 있다면 영화에서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술 한잔 마시라고, 편히 있다 가라고 권했을 것이란 얘기도 나눴다. 상갓집 술은 고인에 대한 기억을 위해서, 고인을 두고 나누는 대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이때의 술은 알코올이 아니다. 일종의 치료제이다.
장례식뿐 아니라 중요한 행사 때마다 술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은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꽤 많다. 영국 마이크 뉴웰이 만든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스카치 위스키 마니아인 가레스(사이먼 캘로우)는 친구들의 결혼식마다 술에 취해 난동, 까지는 아니고 흥을 돋우는 인물인데 어느 날도 여지없이 흥청대며 스코틀랜드 전통춤인 하이랜드 지그를 추다가 심장이 멈춰 급사한다. 이어지는 가레스의 장례식은 우울하고 침통하기 그지없다. 가레스의 동성 애인이었던 매튜(존 해나)는 위스턴 휴 오든의 시 <장례식 블루스>를 낭송하며 펑펑 운다. “모든 시계를 멈추고 전화선을 끊으라 / 육진 뼈다구로 개가 짖지 못하게 하라 / 피아노 소리를 낮추고 가라앉은 북소리와 함께 / 운구를 시작하라. 조문객들을 모으라” 그럼에도 매튜는 가레스가 늘 술을 엄청나게 마셨던 흥겨운 남자였음을 기억하라고 부탁한다.
이 영화의 장례식에는 술이 없지만, 술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게 한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자의 장례식은 기억할 게 별로 없을 수 있다. 자기 장례식을 위해서라도 사람들과의, 사랑하는 연인과의, 친구들과의 술자리 추억을 간간이 만드는 것이 낫다. 안성기 장례식에서 가장 슬펐던 말 중 하나는 ‘이 형, 이제야 술맛을 좀 알기 시작했는데’였다.
마이크 뉴웰 감독이 연출하고 휴 그랜트와 앤디 맥도웰이 주연 배우로 나오는 영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한 장면.(사진=랭크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장례식은 북적여야 한다. 적어도 한국은 그렇다. 술잔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너무 많이 울다가도 불콰해서 우하하 웃기도 해야 한다. 떠나는 사람도 그게 마음이 편한 법이라고 선대들은 늘 얘기하곤 했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말고 마음껏 먹고 마시라고들 얘기하곤 했다. 지금은 유명감독이고 재산도 한 움큼 이룬 R은 조실부모하여 할머니 손에 컸고 너무 가난했다. 그는 늘 밝고 귀여운 외모였는데 조모상을 갔을 땐 다들 상갓집의 그 을씨년스러움에 놀라고 마음 아파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에서 조폭 사채업자지만 합리적인 인물인 최태호(허준호)는 부하 중 한 명이 자살(을 위장한 살해를 당)하자 장례식장에 들러 이렇게 지시한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조화 다 깔아. 내 이름으로 (사서 보내). 그리고 애들 다 불러서 밥 멕여. 장례식장 꽉 차게.” 별거 아닌 장면 같아도 이 대사, 이상하게 가슴을 울린다. 사람들이 부의금을 내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모여 앉아 소주와 맥주, 육개장을 먹으며 죽은 사람의 친지 역할을 하고, 그 술값과 밥값을 보태기 위해서이다.
장례식에는 고인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야 하고 모인 사람들은 술을 좀 마시는 게 좋으며 그중 더러는 다소 취하는 것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보내는 것이다. 술은 그럴 때 마시는 것이다. 술은 삶과 죽음에서 빠지면 안 되는 것이다. 박카스는 바쿠스(술의 신)에서 온 이름이다. 병(술) 주고 약 주는 셈인데 신이 인간들에게 삶도 주고 죽음도 준 맥락과 같은 이치이다. 오든의 시처럼 사람들을 오게 하라. 한국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주는 이유는 워낙 없이 살았기 때문에 이때라도 고기를 잘라 나누고 푹 고아서 먹으라는 뜻이다. 고깃국을 멕이라. 그리고 술을 나누라. 그러면 슬픔도 나누어지고 쪼개어지리니.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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