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18)술꾼들이 가장 애정한 영화제는?
2026-05-08 09:53:04 2026-05-08 09:53:04
영화제에 가면 술꾼들은 영화를 보지 않는다. 영화제의 술꾼들은 영화 대신 술을 먹는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는 알려진 영화제가 40여 개, 상영회 수준의 영화제까지 싹 훑으면 200개가 넘는다. 하루걸러 하루 영화제가 열린다. 많은 영화제가, 한국 인심처럼 술은 ‘멕여준다.’ 그러니 술꾼들은 눈 딱 감고 영화제 뒤풀이를 돌아다니면 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가 영화제 술꾼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영화제가, 그 이름도 유명한 전주국제영화제이다.
 
전주는 국제영화제를 하기에는 ‘최악(?)’의 도시이다. 요 말인즉슨 사실 술꾼들이라면 단박에 알아듣는 얘기일 것이다. 그건 마치 유튜브 프로그램이었던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TV>(2025년 4월 중단됐다)의 마츠다 아키히로가 에피소드마다 오프닝 직후엔 늘, “아 저기서 일단 생맥주 한잔하고 시작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전주영화제에 가면 도착과 동시에 사람들 입에선 늘, ‘저기서 일단 한잔하고 가자’는 말이 나온다. 전주가 영화적으로 볼 때 아주 몹쓸 곳이라고 하는 이유는 먹을 것이 많되, 하나하나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싸다. 아주 싸다. 2026년 현재는 가격대가 조금 높아지긴 했다. 그래도 가성비는 그야말로 ‘짱’이다.
 
유튜브 <오사카에사는사람TV>의 마츠다 아키히로는 어디를 가든 생맥주부터 먼저 하길 즐긴다.(사진=오사카에사는사람TV)
 
그리하여 술꾼들이 제일 경계하는 일이 벌어진다. 술을 다 마셨는데 안주가 한참 남았거나 메인 안주를 다 먹었는데 술은 아직 있다는 것이다. 이 불협화음을 깨는 것은 조성진도 임윤찬도 임동혁 같은 피아니스트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사카의 마츠다 아키히로처럼, 전주의 어느 허름한 노포에서 술 한잔을 마시고 캬~아~(맥주)나 크어~허(막걸리), 쓰으읍(소주)으로 시작한 후 안주 더, 한잔 더, 하다 보면 날이 어두워지고 하루가 넘어간다. 그렇게 불콰하게 술을 주거니 받거니 혀가 배배 꼬일 때면 어떤 멀쩡한 얼굴의 맨정신 후배가 지나가면서 소리친다. “선배. 오늘 마지막 타임 영화가 켄트 존스의 레이트 페임(Late Fame, <나의 사적인 예술가>)이래요. 오늘 아니면 못 봐요. 아 왜 이렇게 술들을 (처)드실까.” 꽥. 그러면 술꾼들은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몸도 반쯤 옹송거린 채 말하곤 한다. “영화제에서 무슨 영화를 봐. 술 마셔야제!” 꽥2.
 
술꾼들의 소원은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이다. 죽을 때도 술잔을 손에 쥐고 죽는 것이다. 배우 권해효는 술을 맛있게 마시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저녁 6시가 넘어갈 때쯤 방송 스태프에게 나를 가리키며 말하곤 했다. “어허 이 형 지금 술잔 쥐고 있을 시간 지났는데. 어허 이러면 안 돼에. (영화 <바람>의 ‘고삐리’ 양아치 버전) 이러면 큰일 나아.”하곤 했다. 권해효와 나는 부산 방송사 KNN의 영화프로그램 <시네포트>를 같이 했다. 그는 메인, 나는 서브였다. 그러니까 <자니윤 쇼>의 자니윤이 권해효, 그 옆에서 엉뚱한 타임에 일어나 박수를 치는 엇박자의 서브 캐릭터가 나였다. 1997년에 시작해 2015년에 없어진 프로였는데 그중 13년을 그와 나는 같이 했고 술을 마셨다. 그도 술꾼이다. 죽을 때 술잔을 쥐여줘야 하지만 내가 그의 손에 쥐여줄지 그가 내 손에 쥐여줄지는 모를 일이다.
 
나이 60을 넘긴 사람들은 모이면 안 된다. 법으로 금지해야 할 일이다. 모인 사람 중 반이 60 넘은 사람들이라면 다 체포해야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첫째는 대체로 등산복 차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산을 타러 다니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이 차림 그대로 월북할 사람들인지 분간이 안 된다. 그러니 친북 좌익게릴라로 일단 체포! (아마도 윤석열의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다들 벙커로 갔을 것이다) 근데 뭐 그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다들 멀어서 걷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60대들을 모이게 하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하여간 그놈의 약 얘기, 그놈의 병 얘기밖에 안 해서이다. 관절염에는 무슨 약을 먹어라, 전립선에는 무슨 약이 좋다, 아침에는 뭘 먹어라, 이거 먹어라 저거 먹지 마라, 등등 시끄러워서 앉아 있지를 못하게 된다.
 
60대들은 두 가지 파이다. ‘약 먹어라 술 먹지 마라’ 파와 그럼에도 ‘술은 먹고 살자 먹다 죽자’ 파이다. 후자는 약간 강성들이 많은데 그들의 특징은 대체로 80년대 학생운동 세대이며, 이 사회의 기득권을 누려 본 적 있다고 오해받는 686들이고 (아직 대체로 없이 산다), 경찰이나 수사관들, 취조관들에게 맞은 경험과 인간이 사실은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할 수 있는 개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직 맥주보다는 소주를 선호하며 일단 먹으면 각 2병 혹은 각 3병이다. 한마디로 미치광이 늙은이들이다. 그들의 인생 슬로건이 이것이다. “죽기 전에 한 잔 더?” 그리고 싱긋 웃는 것이다. 병원 들어가지 않고, 몸에 주렁주렁 호스 꽂지 않고 술 마시다가 죽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다다이스트들이 꿈꾸는 것이다.
 
전주의 막걸리 골목에 있는 예향촌은 전주영화제 초기에 영화인들의 성지였다. 기본 주전자 시스템이 있었던 당시를 형상화했다.(이미지=챗GPT)
 
2000년 시작된 전주영화제가 올해로 27회째이고 5회에서 10회로 갈 때쯤, 영화제의 각종 뒤풀이는 예향촌이란 이름의 막걸리집이었다. 전주 삼천동과 서신동 사이의 전주 막걸리 골목에 있는 주점 중 하나였다. 타지 사람들, 특히 서울 사람들은 처음 이곳에 가면 아줌마들에게 전라도 사투리 욕을 한참 들어야 했는데 자꾸 이 안주 저 안주를 더 달라, 주문을 넣었기 때문이다. 당시 예향촌은 ‘기본 주전자 시스템’으로 유명했으며 안주를 먹으려면 (모든 안주 공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시키면 되는 것이었는데 자꾸 공짜로 더 달라는 것으로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1만2천 원짜리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 10종이 기본으로 나왔다. 각종 부침개, 육전, 생선구이 등이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막걸리를 같은 가격으로 추가 주문하면 이번엔 다른 안주 10종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홍어삼합, 간장게장 등으로 안주가 업그레이드 되었다. 여기에 또 한 주전자를 더 시키면 또 다른 10종이 나왔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도대체 뭐가 남는다는 것이라는 것이냐. 이 가성비 끝판왕인 ‘주전자 시스템’은 2015년경부터, 그러니까 약 10년 전부터 정액제로 바뀌었다. 물가 탓이다. 4만 원대에 술과 안주 10종을 먹는 것인데, 그럼에도 가성비는 여전히 절대적이다. 무엇보다 여기는 전주이다. 맛의 천국 전주이다. 이런 안주상에 ‘부어라 마셔라’를 거부할 수가 없다. 전주 막걸리 골목의 곳곳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막걸리를 부은 탓에 결국 게워 낸 흔적들로 얼룩져 있다. 심야에 택시 기사들은 이곳의 손님들 태우기를 꺼린다. 자칫 차 안에서 우웩하기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셨다고 생각하면 조금 걷는 것이 낫다. 차를 바로 타면 올라오기가 십상이다. 한국 술에서 행오버의 최고봉은 맥주나 와인보다는 막걸리이다. 막걸리에 취하면 답이 없다.
 
올해 전주영화제는 풍성한 편이다. 영화의 거리 고사동의 한 폐건물에는 라면회사 농심이 신라면 팝업스토어를 차렸다. 전주영화제와 라면 영화를 공동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라면이 뿔기 전에>와 <라면이 떨어지면>이다. 모두 단편이다. 전주영화제 관객들, 영화인들에게는 수천 개의 신라면이 제공됐다. 해장에는 라면이 대중적이다. 특히 신라면에 콩나물과 달걀을 풀어서 휘휘 저어, 후후 불며, 훌훌 마시는 맛은 그 어떤 영화의 맛보다 뛰어나다. 전주영화제의 강점은 관객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특히 ‘먹고’ 부분의 감성은 전주영화제가 으뜸이다.
 
술꾼들은 영화제에 가서 영화보다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는 죽기 전에 한잔 더, 를 외치며 술을 마실 것이다. 인생 뭐 있겠는가. 전쟁으로 죽고 바이러스로 죽고 기후 위기로 죽어가고 있는 마당이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말한다. “지구는 망할 거에요.” 내가 술을 두고 시를 쓴다면 이런 시구를 쓰게 될 것이다. “내게 술은 밥이다 / 허기진 가슴을 채워주는 / 따스한 국물이다” 당신의 가슴도 허기지는가. 그렇다면 죽기 전까지 한잔을. 한잔 더, 를.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