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박진영 위원장은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면서 "나는 어느 쪽 진영에도 속할 마음이 없고 진보 진영도 보수 진영도 아닌 박진영"이라고 언급했다.
자신의 정치 이념을 최초로 공개하겠다고 해서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결론적으로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종의 '아재 개그식'으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주변 출연자들은 웃고 넘겼지만, 최근 국제사회 지도자들의 정치 행보를 보면 박 위원장의 발언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최근 일본과 유럽에선 극우 성향 지도자들이 꽤 약진하고 있다. 일본에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첫 여성 총리로 등극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극우적인 면모를 보였던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빗대 '여자 아베'로 불린다. 이탈리아엔 강경 우파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이끄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도 있다. 자국 우선주의, 반유럽연합, 친러시아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멜로니 총리도 '여자 무솔리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극우 성향의 지도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실제 정책이나 발언에서 자신의 성향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있다. 뛰어난 정치력을 바탕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극우 정치인으로 분류됐지만, 취임 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보류하는 등의 행보를 통해서 당장 한·일 관계를 파탄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일종의 실용주의가 엿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다카이치 총리는 역사 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겠다는 발언에선 당장 한·일 관계를 파탄 내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또 추계 예대제 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보류하며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멜로니 총리도 마찬가지다. 친러 성향이지만, 우크라이나 지원과 이민 통제 분야에서 유럽연합(EU)과 발맞추었고, 발언 수위도 온건한 편이다.
이들은 집권 후 강경 보수 정책 추진에 나설 것이란 우려를 불식하고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좌우를 넘어선 실용주의 기조가 이들의 성공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친중·반일, 강경 진보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국익 우선 실용 외교와 중도적 정책 기조로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개별 정치인일 때와 일본 국가 경영을 총책임질 때의 생각과 행동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며 "또 달라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 지도자라면 집권 전과 집권 후가 달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발언이다.
최근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을 이끌어갈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의 등장은 한국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민주당 후보들이 진보적 의제로 승리를 거둔 맘다니 당선인을 반기고 있다.
다만 맘다니 당선인도 진보적 정책 기조에 집중하다가 실제 현실에서 성과를 못 내면 금세 민심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게 '강약중강약' 마인드다. 한 번 강하게 나갔으면 '약'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실용 정치도 비슷하다. 매번 한쪽의 이념만으론 정치를 할 수 없다.
박주용 정치팀장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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