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김태은 기자] 여당과 대통령실 사이 파열음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세종 관가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검찰·사법 개혁을 둘러싼 노선 차이에 더해, 정부 조직 개편, 세제 조정 등 주요 국정 과제에서도 여당과 대통령실의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태 장기화 땐 '정책 엇박자→관가 눈치전→공무원 복지부동' 악순환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관가 내부에서도 엇박자가 계속되면 어느 쪽에 장단 맞춰야 할지 난감하다는 기류입니다.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 외벽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현판 설치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연합뉴스)
조직개편 피로에 '여당 이견'까지…"혼선·불안 여전"
12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세종 관가에서는 '정부 조직 개편'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일부로 환경부가 확대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공식 출범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통상부로 축소됐습니다.
이에 따라 산업부 2차관이 관장하는 에너지정책실 조직 중 전력정책관·재생에너지관·원전산업정책국·수소경제정책관 등 대부분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조직개편안이 확정되는 과정에서도 여당 내 이견은 노출됐습니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산업부 에너지정책을 환경부로 이관하는 개편안은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정부 조직 개편 문제는 가능하면 빨리 정리하는 게 좋다"고 발언한 날이었습니다.
조직개편 과정에서 누적된 피로감에 여당 이견까지 겹치며, 공무원 사이에서는 여전히 업무 혼선과 불안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한 에너지정책실 관계자는 "이 업무를 계속하고 싶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환경부로 넘어가야 한다"며 "직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중"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성향 다른 사람들(산업부·환경부)을 함께 두면 갈등이 불가피하다"며 "기후부 정책 방향에 맞추지 않으면 배제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방향에 맞춰 일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3주 만에 뒤집힌 조직개편…기재부 혼란 '여전'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금융감독 체제 개편'이 지난달 말 갑작스럽게 철회되면서, 기획재정부도 술렁이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로부터 업무를 넘겨받기로 한 계획이 무산되면서, 기재부 기능이 반쪽으로 쪼그라들고 부처 위상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기재부를 재정경제부(재경부)와 기획예산처(예산처)로 분리하는 내용은 지난달 7일 처음 공개됐습니다.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을 '기획예산처'로 떼어내고, 대신 금융위의 국내 금융정책을 흡수해 '재정경제부'로 재편한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기재부 소속 공무원들로서는 부처의 향방을 좌우할 중대 사안이 불과 3주 만에 뒤집힌 것입니다.
결국 재경부는 정책 수단 중 '세제' 카드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기재부도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이 약화했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신설될 재경부가 부총리 부처로서 경제 사령탑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며 "경제정책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직급과 소속에 따라 조직개편을 두고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의견이 분분해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대주주 10억'도 엇박자…정책 신뢰 '흔들'
지난 7월 정부가 '세제 개편안'으로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현행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을 때도 당·정·대 간 의견 차이가 노출된 바 있습니다.
개편안 발표 이튿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3245.44) 대비 3.88% 급락한 3119.41로 거래를 마쳤고, 코스닥 지수는 4.03%(805.24→772.79) 하락했습니다. 정책 방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이 주식시장에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투자자 반발이 확산하자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곧바로 "10억원 대주주 기준의 상향 가능성 검토 등을 살피겠다"며 재검토를 시사했습니다. 이후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여당은 '10억원안'에 대한 우려 의견을 대통령실과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한 달여 동안 정부·여당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대통령실이 관망하는 모양새가 이어지면서, 정책 불확실성은 커졌고 증권시장은 혼조 양상을 보였습니다. 지난 7월 사상 처음 32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 지수는 8월 내내 3100선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갔고, 정부가 지난달 기존 50억원 기준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서야 일단락됐습니다.
앞서 문재인정부 시절에도 '찍어 내리기식 정책 집행'이 논란이 됐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이 공무원 복지부동을 질타하며 속도전을 주문하자, 부처에서는 "정책이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온다"며 반발했습니다. 일방적인 지시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정치·행정의 간극이 벌어졌고 관료 사회 전반에 피로감이 확산했습니다. 이로 인해 정책 추진이 지연되거나 수정된 사례도 나왔습니다.
관가에서도 여당과 대통령실 사이 파열음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한 정부 부처 고위 관계자는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언론을 통해 접하긴 했지만, 실제로 정책이 뒤집히거나 큰소리가 난 사례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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